정안국 [定安國]은 압록강 유역을 중심으로 세워진 발해 유민(遺民)의 국가이다. 발해가 926년에 거란의 급습을 받고 멸망한 뒤 그 유민들은 거란군이 되돌아가자 곧 각 지에서 조직적인 항거를 시작했다. 발해를 계승한 후발해 (정안국)이 마한(馬韓) 이라고 나와있으며 이들 후발해/정안국 역시 초기엔 대씨의 나라였다. 요가 북중국으로 진출하자 만주에서는 발해 유민들이 세력을 결집하여 정안국(定安國)을 세움으로써 만주는 다시 우리민족이 되찾는 듯하였다. 흑룡강의 동쪽에 거점을 확보하고 있는 정안국을 세운 사람이 누구인지 밝혀진 바 없으나 성씨가 오씨(烏氏)인 것은 분명하다. 발해 가 멸망한뒤 구심점인 압록강을 거점으로 성장한 대씨정권이 발해의 유민을 결집해서 후발해 를 세웠으나 열씨 정권에 의해 망했고, 발해 유민의 일부는 열만화(烈萬華)를 왕으로 추대하고, 요나라의 세력이 미치치 못하던 압록강 서쪽을 중심으로 정안국을 세웠다. 전중국을 통일한 송(宋)에 알려진 것은 열씨정권(烈氏政權)의 정안국이다. 즉 970년에 처음으로 국왕 열만화(烈萬華)의 이름으로 송에 사신을 보냈는데, 이때의 국명이 정안국이었다.
정안국 [定安國]은 압록강 유역을 중심으로 세워진 발해 유민(遺民)의 국가이다. 발해가 926년에 거란의 급습을 받고 멸망한 뒤 그 유민들은 거란군이 되돌아가자 곧 각 지에서 조직적인 항거를 시작했다. 발해를 계승한 후발해 (정안국)이 마한(馬韓) 이라고 나와있으며 이들 후발해/정안국 역시 초기엔 대씨의 나라였다. 요가 북중국으로 진출하자 만주에서는 발해 유민들이 세력을 결집하여 정안국(定安國)을 세움으로써 만주는 다시 우리민족이 되찾는 듯하였다. 흑룡강의 동쪽에 거점을 확보하고 있는 정안국을 세운 사람이 누구인지 밝혀진 바 없으나 성씨가 오씨(烏氏)인 것은 분명하다. 발해 가 멸망한뒤 구심점인 압록강을 거점으로 성장한 대씨정권이 발해의 유민을 결집해서 후발해 를 세웠으나 열씨 정권에 의해 망했고, 발해 유민의 일부는 열만화(烈萬華)를 왕으로 추대하고, 요나라의 세력이 미치치 못하던 압록강 서쪽을 중심으로 정안국을 세웠다. 전중국을 통일한 송(宋)에 알려진 것은 열씨정권(烈氏政權)의 정안국이다. 즉 970년에 처음으로 국왕 열만화(烈萬華)의 이름으로 송에 사신을 보냈는데, 이때의 국명이 정안국이었다. 오현명 (烏玄明, ?~?)은 발해 의 계승국인 정안국 의 두 번째 왕이자 마지막 왕이었다. 976년 (또는 979년)에 정안국에서 정변을 일으켜 두 번째 왕으로 등극했다. 981년, 당시 정안국의 왕 오현명(烏玄明)은 여진(女眞)의 사신을 통하여 송(宋)나라에 국서(國書)를 보냈다. 송태종에게 보낸 국서에서 천자의 조정으로 부터 비밀계획을 듣고 정예의 군사를 거느려 거란 토벌을 돕고자 한다. 정안국은 요나라와 적대 관계를 유지하면서 고려에 접근하였고 송과도 교류하였다. 분류:발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