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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국원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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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국원왕(故國原王, ?~371년, 재위 331년~371년) 또는 국강상왕(國罡上王)은 고구려의 제16대 왕이다. 이름은 사유(斯由) 또는 쇠(釗)라고 하며 미천왕의 아들이다. 고국원왕의 이름은 사유 혹은 쇠(釗)라고도 썼다. 미천왕 15년(314)에 태자가 되었다가 32년(331) 봄에 왕이 돌아가자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당시 선비족의 패권을 쥔 사람은 모용황(慕容皇光)이었다. 순간 성 밖에서 날라온 유시 하나가 고구려군을 직접 진두하고 있던 고국원왕의 가슴을 꿰뚫었던 것이다. 갑옷을 입기는 하였으나 워낙 찰력이 강하였고, 화살 끝에는 맹독이 있었다. 현재 서울에는 소수림왕(小獸林王) 비문(碑文)으로 알려진 비문(碑文)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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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국원왕(故國原王, ?~371년, 재위 331년~371년) 또는 국강상왕(國罡上王)은 고구려의 제16대 왕이다. 이름은 사유(斯由) 또는 쇠(釗)라고 하며 미천왕의 아들이다. 고국원왕의 이름은 사유 혹은 쇠(釗)라고도 썼다. 미천왕 15년(314)에 태자가 되었다가 32년(331) 봄에 왕이 돌아가자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당시 선비족의 패권을 쥔 사람은 모용황(慕容皇光)이었다. 고국원왕은 369년에 연나라 모용황과 무모한 전쟁을 벌였다. 형세가 다급해진 고국원왕은 단웅곡이란 깊은 산골짜기로 달아났고 고구려 백성 5만명이 포로로 잡혔다. 이로 인해 부왕 미천왕의 시신을 빼앗긴 것은 물론 노모와 왕비까지 빼았긴다. 왕비는 돌려주었으나 어머니는 그대로 남게 하여 인질로 삼았다.고국원왕 15년(345) 10월 연나라 모용황은 모용각으로 하여금 남소를 함락시킨 후 수비병을 두고 돌아갔다. 왕은 한반도 중부지역으로의 진출을 꾀하여 대방군(帶方郡) 지역으로 북진하고 있던 백제와 격돌하게 되었다. 왕은 369년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백제를 침공하였으나, 치양(雉壤: 지금의 白川)전투에서 백제 태자 근구수(近仇首)가 371년 백제가 임진강을 건너 평양을 점령하고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전사시킨다. 순간 성 밖에서 날라온 유시 하나가 고구려군을 직접 진두하고 있던 고국원왕의 가슴을 꿰뚫었던 것이다. 갑옷을 입기는 하였으나 워낙 찰력이 강하였고, 화살 끝에는 맹독이 있었다. 현재 서울에는 소수림왕(小獸林王) 비문(碑文)으로 알려진 비문(碑文)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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