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성 읍성은 돌로 쌓은 석성으로 둘레가 2,565척에 높이는 13척이며 성안에 우물이 있었다. 현내면의 고성산성(高城山城)과 간성읍의 읍성(邑城)을 비롯해 토성면 봉포리와 죽왕면 삼포리에도 성터가 남아 있다. 조선 세종대에 연해지역의 방어전략이 산성으로부터 읍성 위주로 전환되면서 간성 읍성이 축조되자 이 금수리산성은 간성 읍성의 배후로서 그 기능이 약화돼 그 후로는 거의 방치돼 왔던 것이다. 예로부터 함경도와 영동지방을 연결해주는 길목에 위치한 고성은 부족국가 시대에 동예에 속하였으나 삼국시대 고구려의 영역이었다. 그 후 신라의 세력이 강성해져 진흥왕때 신라의 영토가 되었고, 현재 대부분의 고성군 지역은 수성군으로 불리고 일부지역은 고성군으로 불리다가 고려때 각각 고성현과 간성현으로 불리게 된다. 나중에 간성현이 군으로 승격되어 고성현을 관할하다가 조선 세종때 고성현도 승격되어 고성군과 간성군으로 되었다가 1914년 군ㆍ면 통폐합에 의해 고성군으로 통합되었다. 1919년에는 간성군이 폐지되고 토성ㆍ죽왕 2개 면이 양양군에 넘어가고 고성군으로 불리게 된다.
간성 읍성은 돌로 쌓은 석성으로 둘레가 2,565척에 높이는 13척이며 성안에 우물이 있었다. 현내면의 고성산성(高城山城)과 간성읍의 읍성(邑城)을 비롯해 토성면 봉포리와 죽왕면 삼포리에도 성터가 남아 있다. 조선 세종대에 연해지역의 방어전략이 산성으로부터 읍성 위주로 전환되면서 간성 읍성이 축조되자 이 금수리산성은 간성 읍성의 배후로서 그 기능이 약화돼 그 후로는 거의 방치돼 왔던 것이다. 예로부터 함경도와 영동지방을 연결해주는 길목에 위치한 고성은 부족국가 시대에 동예에 속하였으나 삼국시대 고구려의 영역이었다. 그 후 신라의 세력이 강성해져 진흥왕때 신라의 영토가 되었고, 현재 대부분의 고성군 지역은 수성군으로 불리고 일부지역은 고성군으로 불리다가 고려때 각각 고성현과 간성현으로 불리게 된다. 나중에 간성현이 군으로 승격되어 고성현을 관할하다가 조선 세종때 고성현도 승격되어 고성군과 간성군으로 되었다가 1914년 군ㆍ면 통폐합에 의해 고성군으로 통합되었다. 1919년에는 간성군이 폐지되고 토성ㆍ죽왕 2개 면이 양양군에 넘어가고 고성군으로 불리게 된다. 해방당시에는 이 지역이 2읍 6면 (고성읍ㆍ장전읍ㆍ거진면ㆍ수동면ㆍ외금강면ㆍ서현ㆍ내면ㆍ간성면)으로 북한에 속하였는데, 휴전후 1954년에 수복하여 간성면ㆍ거진면ㆍ현내면ㆍ수동면 일부가 고성군이 되었다. 1919년에는 간성군이 폐지되고 토성ㆍ죽왕 2개 면이 양양군에 넘어가고 고성군으로 불리게 된다. 해방당시에는 이 지역이 2읍 6면 (고성읍ㆍ장전읍ㆍ거진면ㆍ수동면ㆍ외금강면ㆍ서현ㆍ내면ㆍ간성면)으로 북한에 속하였는데, 휴전후 1954년에 수복하여 간성면ㆍ거진면ㆍ현내면ㆍ수동면 일부가 고성군이 되었다. 1963년 토성면과 죽왕면이 다시 양양군에서 편입되고 1973에는 거진면이, 1979년에는 간성면이 읍으로 승격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북한도 고성군 북부지역과 통천군 남부지역을 합쳐 고성군을 신설하고 장전읍을 고성읍으로 부르고 있어 현재 남북에 2개의 고성군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분류:읍성 분류:강원 고성의 산성 분류:간산성 분류:성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