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비누스[Decimus Caelius Calvinus Balbinus,?~ 238]는 로마의 황제(238)이다. 살리족(族) 사제로 귀족 출신이었으며 2차례 콘술(집정관)을 지냈고 아시아 지역 프로콘술(속주 총독)을 지냈다. 238년 원로원이 막시미누스(235~238 재위)에 대항해 이탈리아 도시들의 반란을 주도하고 20인 위원회에 정부를 맡겼을 때 그는 그 20인 중 한 사람이었다. 그뒤 원로원에 의해 푸피에누스 막시무스와 함께 공동 황제로 선출되었다. 막시무스는 이미 그전에 로마 시 프라이펙투스(장관)를 지내면서 로마 시민들에게 신망을 잃었다. 분노한 군중이 카피톨리누스 신전에 있던 원로원과 두 황제를 포위하자 그와 막시무스는 반란 주도자 고르디아누스 1세의 손자인 어린 고르디아누스를 부황제(caesar)로 임명해 위기를 모면했다. 고르디아누스 3세는 고르디아누스 1세의 손자로, 로마 군대와 시민의 지지를 얻어, 막시무스·발비누스 두 황제에 맞서 등위(登位)를 선언하였다. 두 황제가 죽은 뒤에 단독제(單獨帝)가 되었으나, 부하에게 살해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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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비누스[Decimus Caelius Calvinus Balbinus,?~ 238]는 로마의 황제(238)이다. 살리족(族) 사제로 귀족 출신이었으며 2차례 콘술(집정관)을 지냈고 아시아 지역 프로콘술(속주 총독)을 지냈다. 238년 원로원이 막시미누스(235~238 재위)에 대항해 이탈리아 도시들의 반란을 주도하고 20인 위원회에 정부를 맡겼을 때 그는 그 20인 중 한 사람이었다. 그뒤 원로원에 의해 푸피에누스 막시무스와 함께 공동 황제로 선출되었다. 막시무스는 이미 그전에 로마 시 프라이펙투스(장관)를 지내면서 로마 시민들에게 신망을 잃었다. 분노한 군중이 카피톨리누스 신전에 있던 원로원과 두 황제를 포위하자 그와 막시무스는 반란 주도자 고르디아누스 1세의 손자인 어린 고르디아누스를 부황제(caesar)로 임명해 위기를 모면했다. 발비누스는 막시무스가 막시미누스를 물리치기 위해 진격하는 동안 로마에 남아 있었다. 막시무스가 단독 지배자 자리를 노리고 있다고 생각한 발비누스는 막시무스가 돌아오자 그와 반목했으며 로마 시에 주둔하고 있던 황실 근위대는 이 분쟁을 이용해 두 황제를 모두 납치했다. 그러나 근위대는 이후 게르만족 호위병들을 피해 탈출하면서 이들을 죽였고 결국 고르디아누스가 단독 황제로 선포되었다. 고르디아누스 3세는 고르디아누스 1세의 손자로, 로마 군대와 시민의 지지를 얻어, 막시무스·발비누스 두 황제에 맞서 등위(登位)를 선언하였다. 두 황제가 죽은 뒤에 단독제(單獨帝)가 되었으나, 부하에게 살해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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