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험성(王險城)은 번한의 도읍이였다. 고조선의 왕도였던 도읍의 명칭을 놓고 왕검성과 왕험성을 구분하지 못하여 사실상 많은 사람들이 혼동을 일으키고 있다. 왕검성(王儉城)은 왕험성(王險城)이며, 일명 험독성(險瀆城)이라고 사기(史記)에 기록하고 있다. 《괄지지(括地志)》에 이르기를 고려가 평양성에서 다스렸는데 바로 왕험성(王險城)이다]라고 하였으며,《사기》와《한서》및《통전(通典)》에도 모두 '王險城'이란 글자가 있으니 이 또한 '儉'자가 잘못 쓰여진 것일 수도 있다. 사기와 한서에서는 위만 조선의 수도가 왕험성이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위만은 진번과 조선의 오랑캐 및 옛 연나라와 제나라의 망명자들을 복속시켜 거느리고 왕이 되었으며 왕험성(관미성)에 도읍하였다.
왕험성(王險城)은 번한의 도읍이였다. 고조선의 왕도였던 도읍의 명칭을 놓고 왕검성과 왕험성을 구분하지 못하여 사실상 많은 사람들이 혼동을 일으키고 있다. 왕검성(王儉城)은 왕험성(王險城)이며, 일명 험독성(險瀆城)이라고 사기(史記)에 기록하고 있다. 《괄지지(括地志)》에 이르기를 고려가 평양성에서 다스렸는데 바로 왕험성(王險城)이다]라고 하였으며,《사기》와《한서》및《통전(通典)》에도 모두 '王險城'이란 글자가 있으니 이 또한 '儉'자가 잘못 쓰여진 것일 수도 있다. 사기와 한서에서는 위만 조선의 수도가 왕험성이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위만은 진번과 조선의 오랑캐 및 옛 연나라와 제나라의 망명자들을 복속시켜 거느리고 왕이 되었으며 왕험성(관미성)에 도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