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秦仲)은 진나라의 제후였다. 진중(秦仲)의 아버지는 공백이였다. 진중이 즉위한 지 3년, 주 여왕(周?王)이 무도(無道)하니, 제후들 중에서 배반하는 자가 있었으며 서융도 주 왕실에 반기를 들고 견구의 대락 일족을 주멸하였다. 주 선왕(周宣王)이 즉위하자 진중을 대부(大夫)로 삼아서 서융을 토벌하였다. 그러나 진중은 재위 23년에 서융 땅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에게는 아들 다섯이 있었는데, 큰 아들은 장공(莊公)이라고 하였다. 주 선왕은 장공의 다섯 형제를 불러 7,000명의 병사를 주고 서융을 치게 하자, 그들은 서융을 물리쳤다. 이에 선왕은 진중의 후손에게 상을 내리고 그들의 선조인 대락의 봉지인 견구까지 그들에게 주었으며, 그들을 서수의 대부로 삼았다.
진중(秦仲)은 진나라의 제후였다. 진중(秦仲)의 아버지는 공백이였다. 진중이 즉위한 지 3년, 주 여왕(周?王)이 무도(無道)하니, 제후들 중에서 배반하는 자가 있었으며 서융도 주 왕실에 반기를 들고 견구의 대락 일족을 주멸하였다. 주 선왕(周宣王)이 즉위하자 진중을 대부(大夫)로 삼아서 서융을 토벌하였다. 그러나 진중은 재위 23년에 서융 땅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에게는 아들 다섯이 있었는데, 큰 아들은 장공(莊公)이라고 하였다. 주 선왕은 장공의 다섯 형제를 불러 7,000명의 병사를 주고 서융을 치게 하자, 그들은 서융을 물리쳤다. 이에 선왕은 진중의 후손에게 상을 내리고 그들의 선조인 대락의 봉지인 견구까지 그들에게 주었으며, 그들을 서수의 대부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