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발령은 삭발령이다. 1644년 체두변발령(剃頭辮髮令), 즉 치발령(薙髮令)을 내려 전 중국민에게 만주족의 두발형을 강요하였다. 명 숭정(崇禎) 17년ㆍ청 순치(順治) 원년(1644), 명은 이자성(李自成)의 난에 의하여 멸망. 명의 장군 오삼(吳三)의 안내로 산해관(山海關)을 넘은 청군은 이자성을 물리치고 순치3년(1647)에는 다른 유적의 세력도 평정하여 그대로 중국 전토를 지배하에 두게 된다. 입관한지 얼마되지 않아 치발령(薙髮令, 삭발령(削髮令)을 내리고 한족(漢族)에게 여진족의 풍습인 변발(弁髮)을 강요하였다. 의복도 여진풍으로 강요한 것은 소수의 여진족이 다수의 한족을 지배하기 위한 문화통제의 일환이었다.
치발령은 삭발령이다. 1644년 체두변발령(剃頭辮髮令), 즉 치발령(薙髮令)을 내려 전 중국민에게 만주족의 두발형을 강요하였다. 명 숭정(崇禎) 17년ㆍ청 순치(順治) 원년(1644), 명은 이자성(李自成)의 난에 의하여 멸망. 명의 장군 오삼(吳三)의 안내로 산해관(山海關)을 넘은 청군은 이자성을 물리치고 순치3년(1647)에는 다른 유적의 세력도 평정하여 그대로 중국 전토를 지배하에 두게 된다. 입관한지 얼마되지 않아 치발령(薙髮令, 삭발령(削髮令)을 내리고 한족(漢族)에게 여진족의 풍습인 변발(弁髮)을 강요하였다. 의복도 여진풍으로 강요한 것은 소수의 여진족이 다수의 한족을 지배하기 위한 문화통제의 일환이었다. 도르곤이 죽은 것은 순치7년(1650)이다. 39세의 젊은 나이였다. 그는 죽은 형 홍타이지의 황후와 재혼하여 순치제의 양부로서 권세를 휘둘렀다. 그 때문에 사후 친정을 시작한 순치제에게 미움받아 모반을 꾸미고 있었다는 이유로 추증되었던 칭호, 작위 등을 박탈당하여 4대 건륭제(乾隆帝)의 시대가 되어서야 겨우 명예를 회복하였다. 도르곤은 실제로는 제위에 오르지 못하였으나 장성을 넘어 여진족의 중국지배에 착수하고 청대 300년을 연 것은 황숙이며 섭정왕이었던 그였다. 분류:변발 분류:발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