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豊城)은 안시성(安市)의 서북쪽 100리에, 한성(韓城)은 풍성(豊城)의 남쪽 200리에, 옥전보(玉田堡)는 한성(韓城)의 서남쪽 50리에 있다고 했다. 용천검은 용천태아(龍泉太阿)의 준말로서 중국 풍성지방에 파묻혀 있다가 나타나게 된 명검(名劍)을 이르는 말이다. 풍성검기(豊城劍氣)라고도 하여 文武를 겸비한 큰 인물이 태어나는 곳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고려 태조 왕건은 풍기의 도솔봉下 등강성과 마산에서 후백제의 견훤으로부터 항복을 받아 삼한을 통일한 후, 그의 용천검을 땅에 묻고 떠나니 훗날 그 자리에 삼한통일을 기념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의미로 「용천사」라는 절을 세워 호국기원을 위해 태조의 영정을 봉안하게 되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로 절은 소실되었고, 그 터만 전해 오지만 역사의 발자취를 찾는 후학들에게는 가슴을 달궈 주는 국난극복의 현장이기도 하다.
풍성(豊城)은 안시성(安市)의 서북쪽 100리에, 한성(韓城)은 풍성(豊城)의 남쪽 200리에, 옥전보(玉田堡)는 한성(韓城)의 서남쪽 50리에 있다고 했다. 용천검은 용천태아(龍泉太阿)의 준말로서 중국 풍성지방에 파묻혀 있다가 나타나게 된 명검(名劍)을 이르는 말이다. 풍성검기(豊城劍氣)라고도 하여 文武를 겸비한 큰 인물이 태어나는 곳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고려 태조 왕건은 풍기의 도솔봉下 등강성과 마산에서 후백제의 견훤으로부터 항복을 받아 삼한을 통일한 후, 그의 용천검을 땅에 묻고 떠나니 훗날 그 자리에 삼한통일을 기념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의미로 「용천사」라는 절을 세워 호국기원을 위해 태조의 영정을 봉안하게 되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로 절은 소실되었고, 그 터만 전해 오지만 역사의 발자취를 찾는 후학들에게는 가슴을 달궈 주는 국난극복의 현장이기도 하다. 용안현(지금의 전북 익산시 용안면)의 옛 이름이다. 광한루를 호남제일루라 하면 호남제일정은 피향정이라고 흔히들 일컫는다. 내부에도 또 하나의 피향정 현판이 있는데 풍성(豊城) 조항진(趙恒鎭)의 낙관이 분명한 것으로 보아 밖의 것 보다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정자 안에는 중수기를 비롯해서 많은 편액들이 있는데 대부분 고운(孤雲)과 연지(蓮池)에 관련된 글들이다. 분류:고구려의 성 분류:요서 분류:풍산성 분류:풍성 분류:익산의 산성 분류:요서 10성 분류:용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