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불(舍利佛, Sariputta) 또는 지혜제일(智慧第一) : 지혜(智慧)가 제일 높은 제자(弟子)이다. 마가다국의 수도 라자가하(王舍城) 근처 나라다 마을에 사는 부유한 바라문의 여덟 아들 중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원래 이름은 우파티샤였으나 어머니의 이름인 사리를 따서 사리풋타라 불렀다. 어려서부터 목건련과 친하였으며 불법에 귀의한 뒤 지혜가 매우 날카로워 능히 모든 의심을 해결해 주었기 때문에 지혜제일(智慧第一)이라 칭송 받았다.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여 이미 고대 인도의 성전인 네 가지 베다(Veda)를 익혀 그 뜻을 통달했고 16세 때는 부친의 제자들을 모두 굴복시켰으며 예술에도 재능이 출중하여 코리가 마을의 목갈라나와 함께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곤 했다. 어느 날 그들은 근처의 산에서 바라문교의 제사를 구경하다가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진실한 깨달음을 구하기로 맹세했다. 부처님보다 나이가 많으며 이 사건 이후 목갈라나와 함께 부처님께 입적을 위한 작별을 고하고 나라다 마을로 가서 친척들에게 마지막 포교를 편 뒤 목건련 입멸 후 슬퍼하다가 석가모니 부처님보다 먼저 입적(入寂)하였다.
사리불(舍利佛, Sariputta) 또는 지혜제일(智慧第一) : 지혜(智慧)가 제일 높은 제자(弟子)이다. 마가다국의 수도 라자가하(王舍城) 근처 나라다 마을에 사는 부유한 바라문의 여덟 아들 중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원래 이름은 우파티샤였으나 어머니의 이름인 사리를 따서 사리풋타라 불렀다. 어려서부터 목건련과 친하였으며 불법에 귀의한 뒤 지혜가 매우 날카로워 능히 모든 의심을 해결해 주었기 때문에 지혜제일(智慧第一)이라 칭송 받았다.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여 이미 고대 인도의 성전인 네 가지 베다(Veda)를 익혀 그 뜻을 통달했고 16세 때는 부친의 제자들을 모두 굴복시켰으며 예술에도 재능이 출중하여 코리가 마을의 목갈라나와 함께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곤 했다. 어느 날 그들은 근처의 산에서 바라문교의 제사를 구경하다가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진실한 깨달음을 구하기로 맹세했다. 그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7일간의 단식 끝에 출가를 허락받았으며 목갈라나(목건련= 목련존자)와 함께 출가했다. 그들은 라자가하에서 당시 명성을 떨치던 유명한 회의론자(懷疑論者)인 산자야의 문하에 들어가 그 교지(敎旨)를 통달하고 불과 7일 만에 스승을 대신할 만큼 되어 250제자의 상수(上首)가 되었으나 완전한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했다. 그 며칠 후 라자가하의 길거리에서 탁발하던 부처님의 제자 앗사지(馬勝)-아설시(阿設示)-를 만나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들었다. 그는 목갈라나에게 알려 산자야 문하 250명의 다른 수행자들과 함께 죽림정사로 가서 부처님께 귀의하여 15일만에 아라한과를 얻었다. 뛰어난 지혜로 많은 중생을 제도하였으며 반야심경(般若心經), 화엄경(華嚴經) 또는 법화경(法華經)이나 어려운 내용을 설명할 때는 반드시 사리불을 중심으로 말씀한다. 이들은 점차 불교교단의 중심인물이 되었으며 교단 내의 여러 문제들도 맡아서 해결해 냈다. 데바닷타(제바달다:提婆達多)가 부처님에게 반대하여 교단이 분열의 위기에 처했을 때도 혼란 속에 빠진 수행자들을 설득하여 사태를 수습했다. 불교교단에 반대하거나 데바닷타를 따르던 무리들이 누차에 걸쳐 그들을 박해해 목갈라나는 거의 죽음 직전에 이르도록 몽둥이로 맞기까지 했는데 그와 목갈라나(목건련:目連)가 교단을 지키려는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였다. 부처님보다 나이가 많으며 이 사건 이후 목갈라나와 함께 부처님께 입적을 위한 작별을 고하고 나라다 마을로 가서 친척들에게 마지막 포교를 편 뒤 목건련 입멸 후 슬퍼하다가 석가모니 부처님보다 먼저 입적(入寂)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