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읍성은 태안읍 남문리에 자리하고 있는데, 조선조(朝鮮朝)의 태종(太宗) 때(1401 ~ 1418)에 축성된 석성(石城)으로서, 그 둘레는 1,561尺(473미터)에 높이 122尺 (3.6미터) 이다. 성안(城內)에는 4개의 우물이 있었고 또한 성에는 동서남북으로 4대문이 있었는데, 이 중 동남문만이 사용되었으며, 북서문은 얼마후에 폐쇄 시켰다. 왜구의 침입으로 말미암아 하나의 군이 폐군되었다고 하는 것은, 그들의 침략상(侵掠狀)이 잔악(殘惡)하였음을 여실히 입증해 주고 있는 것이다. 현재 태안군내에는 여러개의 성이 있는데, 이 중 대부분이 산성(山城)으로 축조되었지만 태안성은 읍성(邑城)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그리고 이 태안읍성 역시 동학혁명(東學革命)때(1894) 폐성되었는데, 그러나 다행히도 구 군청 뒤쪽 민가 근처에 일부의 성벽(城壁)이 그대로 남아 있어 태안읍성(泰安邑城) 연구의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분류:태안의 산성 분류:읍성 분류:태산성 분류:안산성
태안 읍성은 태안읍 남문리에 자리하고 있는데, 조선조(朝鮮朝)의 태종(太宗) 때(1401 ~ 1418)에 축성된 석성(石城)으로서, 그 둘레는 1,561尺(473미터)에 높이 122尺 (3.6미터) 이다. 성안(城內)에는 4개의 우물이 있었고 또한 성에는 동서남북으로 4대문이 있었는데, 이 중 동남문만이 사용되었으며, 북서문은 얼마후에 폐쇄 시켰다. 왜구의 침입으로 말미암아 하나의 군이 폐군되었다고 하는 것은, 그들의 침략상(侵掠狀)이 잔악(殘惡)하였음을 여실히 입증해 주고 있는 것이다. 현재 태안군내에는 여러개의 성이 있는데, 이 중 대부분이 산성(山城)으로 축조되었지만 태안성은 읍성(邑城)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그리고 이 태안읍성 역시 동학혁명(東學革命)때(1894) 폐성되었는데, 그러나 다행히도 구 군청 뒤쪽 민가 근처에 일부의 성벽(城壁)이 그대로 남아 있어 태안읍성(泰安邑城) 연구의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분류:태안의 산성 분류:읍성 분류:태산성 분류:안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