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5년에는 당시의 실권자였던 최영(崔塋)을 계림윤(鷄林尹)으로 폄출하는 등 강력하게 무신세력을 거세하였다. 대신 공민왕의 신임을 받고 있던 승려출신인 신돈(辛旽 : 편조 遍照)을 등장시켜 권력구조를 새롭게 재편성하였다. 이후 신돈은 권력의 정상에 서서 그 위치를 공고히 하게 되었고, 신돈이 집권하면서 전민변정(整)도감을 설치하여 추진한 사회-경제적 측면에서의 활동이 바로 전민의 추정사업(推整事業)이었다. 신돈은 한해(旱害)와 관련하여 1365년에 설치된 형인추정도감(刑人推整都監)의 기능을 확대 전환하여 명칭을 분류:전민변정도감공민왕이 즉위하면서 반원개혁에 착수했던 당시의 시대상황으로 볼 때 예의추정도감은 몽골의 풍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식 및 예교(禮敎)의 재정비와 관련있는 일을 맡아보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1362년에 설치된 예의추정색(禮儀推正色)과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알 수 없다.
1365년에는 당시의 실권자였던 최영(崔塋)을 계림윤(鷄林尹)으로 폄출하는 등 강력하게 무신세력을 거세하였다. 대신 공민왕의 신임을 받고 있던 승려출신인 신돈(辛旽 : 편조 遍照)을 등장시켜 권력구조를 새롭게 재편성하였다. 이후 신돈은 권력의 정상에 서서 그 위치를 공고히 하게 되었고, 신돈이 집권하면서 전민변정(整)도감을 설치하여 추진한 사회-경제적 측면에서의 활동이 바로 전민의 추정사업(推整事業)이었다. 신돈은 한해(旱害)와 관련하여 1365년에 설치된 형인추정도감(刑人推整都監)의 기능을 확대 전환하여 명칭을 분류:전민변정도감공민왕이 즉위하면서 반원개혁에 착수했던 당시의 시대상황으로 볼 때 예의추정도감은 몽골의 풍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식 및 예교(禮敎)의 재정비와 관련있는 일을 맡아보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1362년에 설치된 예의추정색(禮儀推正色)과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