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ちょうせんそうとくふ )는 1910년 한일 병합에서부터 1945년 광복까지 한국에 대한 일본의 식민 통치를 하였다. 일본은 무단통치(武斷統治)란 식민지통치체제를 확립하였다. 무단통치 지배의 핵심 기구는 조선총독부였다. 1910년 8월 29일 일제는 조선을 강제로 식민지화하여 조선총독부를 설치, 총독을 두어 식민통치를 담당케 하였다. 약 36만 명의 일본 군인이 있었다. 이들을 포함한 약 2600만 명의 한국 거주민을 통치하고 있었던 조선 총독부 관리는 7만860명이었다.(지방 행정 기관 및 한국인 포함).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1918년에 5만분의1 축적의 우리나라 전도를 제작했는데 제주도는 10장으로 나누에서 제작을 했다. 그 중 1장이 분실 되서 현재 9장이 존재한다. 현재 종로도서관에서 온라인으로 볼 수있다. 1910년부터 1918년까지 일본이우리나라 토지의 소유권을 분명히 한다는 구실을 들어, 우리나라의 토지를 빼앗기 위해 벌인 대규모의 조사 사업이다. 1926년 일제강점기 때인 경복궁내에 조선총독부 청사가 들어서면서 광화문은 경복궁내 건춘문 북쪽으로 옮겨졌다.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ちょうせんそうとくふ )는 1910년 한일 병합에서부터 1945년 광복까지 한국에 대한 일본의 식민 통치를 하였다. 일본은 무단통치(武斷統治)란 식민지통치체제를 확립하였다. 무단통치 지배의 핵심 기구는 조선총독부였다. 1910년 8월 29일 일제는 조선을 강제로 식민지화하여 조선총독부를 설치, 총독을 두어 식민통치를 담당케 하였다. 약 36만 명의 일본 군인이 있었다. 이들을 포함한 약 2600만 명의 한국 거주민을 통치하고 있었던 조선 총독부 관리는 7만860명이었다.(지방 행정 기관 및 한국인 포함).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1918년에 5만분의1 축적의 우리나라 전도를 제작했는데 제주도는 10장으로 나누에서 제작을 했다. 그 중 1장이 분실 되서 현재 9장이 존재한다. 현재 종로도서관에서 온라인으로 볼 수있다. 1910년부터 1918년까지 일본이우리나라 토지의 소유권을 분명히 한다는 구실을 들어, 우리나라의 토지를 빼앗기 위해 벌인 대규모의 조사 사업이다. 1921년 9월 12일 의열단 김익상은 일제강점기였던 1921년 총독 암살을 위해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투척했다. 그는 전기수리공으로 가장해 폭탄 2개를 가지고 총독부 청사에 들어갔다. 1926년 일제강점기 때인 경복궁내에 조선총독부 청사가 들어서면서 광화문은 경복궁내 건춘문 북쪽으로 옮겨졌다. 1995년 8월 15일 옛 조선총독부 건물 해체 철거냐 보존이냐로 논란을 빚었던 구조선총독부 건물의 첨탑이 1995년 8월 15일 오전 9시 21분 광복 50주년 경축기념식을 기해 잘려내졌다. 1996년 11월 13일에 사회 각층의 여러 인사들을 모아 놓고 성대한 폭파식을 했었다. 분류:일제 강점기의 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