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휘는 1873년에 태어났다. 그리고 18살이 되던 해 군관 학교에 입학하였으며, 졸업 후 육군 참령을 지냈다. 미국 소학교에 입학해서 독립 선언서만세를 불렀으며, 링컨 중학교에서 공부 한 후 신민회를 조직 하였다. 37살이던 1909년에는 안중근 사건으로 붙잡혔다. 이듬해 1910년 흥사단을 조직하러 로스엔젤레스로 가서, 1913년 흥사단을 조직했다. 1919년 이동휘 의사는 국무총리에 취임했다. 국무 총리 직을 사임한 후에는 시베리아에 가서 일생을 마쳤다.
이동휘는 1873년에 태어났다. 그리고 18살이 되던 해 군관 학교에 입학하였으며, 졸업 후 육군 참령을 지냈다. 미국 소학교에 입학해서 독립 선언서만세를 불렀으며, 링컨 중학교에서 공부 한 후 신민회를 조직 하였다. 37살이던 1909년에는 안중근 사건으로 붙잡혔다. 이듬해 1910년 흥사단을 조직하러 로스엔젤레스로 가서, 1913년 흥사단을 조직했다. 1919년 이동휘 의사는 국무총리에 취임했다. 국무 총리 직을 사임한 후에는 시베리아에 가서 일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