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 - 카이세리 [Kayseri,(라)Caesarea Cappadociae]는 터키 중부에 있는 도시이다. 카이세리는 터키 중부에 있는 카이세리주의 주도로 수도 앙카라에서 남동쪽으로 270km 떨어진 위치에 있으며 터키를 종단하는 철도의 중간 지점에 있다. 사화산인 에레이예스 산(3,917m, 아르가이우스 산) 기슭 밑으로 펼쳐진 해발 1,043m의 평탄한 고지에 자리잡고 있다. 앙카라에서 동남동쪽으로 265㎞ 떨어져 있다. 본래는 마자카로 불렸으나 뒤에 아르가이우스가 아리아라테스 5세의 이름을 따 도시의 이름을 바꾸면서 에우세비아로 알려졌다. 카파도키아 왕들의 주재지였던 이 도시는 기원전 1세기에 아르메니아 왕인 티그라네스 1세의 침략을 받았다. 서기 1세기에는 다시 카이사레아카파도키아이로 이름이 바뀌어 로마 속주인 카파도키아의 수도 역할을 했다. 이 시기에 제국의 화폐 주조소가 세워졌다. 성 바실리우스가 도시 북동쪽에 교회를 세운 4세기에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지였다. 1080년경 셀주크 투르크인들에게 점령되어 카이세리로 이름이 바뀌었다. 카이세리는 뒤에 다니슈멘드 공국의 일부가 되었다. 1243년 몽골족에게 함락된 후, 14세기에 투르크멘 에르타니드 공국의 수도였다가 1397년 오스만 투르크에 넘어갔다. 1402년 오스만 투르크가 티무르(태멀레인)에게 패한 뒤, 카라마니드 투르크멘족에게 합병되었다. 그후 이집트와 시리아의 맘루크 왕조의 지배 아래 있다가 1515년에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인 셀림 1세에게 다시 점령되었다. 오늘날 이 도시에는 로마와 중세의 유산이 많이 남아 있다. 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지은 후 셀주크 투르크와 오스만 투르크 시대에 재건된 성채가 잘 보존되어 있다. 원형 및 8각형 능묘들은 13세기 셀주크 투르크의 예술을 보여주는 뛰어난 유적이며, 그 중 섬세한 장식으로 알려진 되네르큄베트('돌아가는 영묘')가 가장 유명하다. 많은 모스크와 메드레세(신학교) 가운데서는 울루 자미(대사원)와 유명한 건축가 시난이 지은 쿠르슌루 자미(16세기), 오늘날 셀주크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사히비예 메드레세 등이 꼽힌다. 13세기에 지어진 후안드 메드레세는 오늘날 지역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카이세리에는 또한 터키에서 가장 오래된 의학교인 기야시예시파히예(13세기초)를 비롯하여 지붕이 다채로운 시장도 있다. 보다 근대적인 건물들이 성채 북쪽의 철도역으로 통하는 가로수길 주변에 밀집되어 있으며, 이 지역과 시바스를 잇는 도로 근처에는 중동지방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상 숙소로 알려진 술탄하니 여관이 있다. 카이세리는 주변의 넓은 농경지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판매하는 주요시장으로서, 오늘날 급속한 산업화로 설탕·시멘트·직물·가전제품 및 항공기 부품 생산에 주력하게 되었다. 또한 금세공과 양탄자 제조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1978년에 설립된 에르지예스대학교가 있다. 교통이 편리한 곳에 자리잡고 있어 유통 및 운송 중심지 역할을 한다. 이스탄불과는 항공 편으로 이어지며, 아나톨리아 지방의 주요도시들과는 철도 및 도로를 통해 연결된다. 카이세리에서 북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퀼테페의 시바스 가도(街道) 연변에서는 기원전 3000~2000년경에 존재했던 히타이트와 아시리아의 고대 도시인 카네슈 발굴작업이 이루어졌는데, 카네슈 외곽지대에 있던 기록 보관소에서 설형문자를 새긴 점토판이 수만 개 발견되었다. 이 점토판은 터키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그 당시 경제 생활을 자세히 설명해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주변지역은 아나톨리아 중앙고원에 자리잡고 있으며, 키질·예니제 강이 흐른다. 농산물로는 호밀·기장·건포도·과일 등이 생산되며, 가축사육이 중요한 경제활동이다. 인구는 454,000(1994)이다. 분류:카네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