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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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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로(Tyre)는 시리아의 고대 도시이다. 고대 당시 찬란한 영화를 간직한 두로는 섬이었던 도시이다. 두로는 베니게의 중요한 해안 도시로 시돈에서 남쪽으로 40km 지점에 위치해 있는 곳이다. 두로는 고대에 세워진 도시로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BC 2800년경에 세워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베니게는 항해, 조선술이 발달해 해상무역을 장악했던 해양국으로 국제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사 23:8). 분류:티레 분류:두로두로의 주산물로는 자색 염료, 금속 세공, 유리 기구 등의 제조로 유명하였는데 두로의 배들은 애굽, 구브로, 로도스, 시실리, 북아프리카의 식민지들과 다시스를 항해하며 자색 물들인 옷감과 재목, 밀, 기름, 포도주, 금속, 노예, 말 등을 수출하여 두로에 엄청난 부를 가져왔다(대상 22:4; 겔 27:3; 사 23:18). 두로는 신약 시대에도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였으며 동서 문화의 교차로 역할을 하였다. 636년 아랍에 의해 정복되었고 지금은 ‘수르’라는 작은 도시로 남아 있다. 그러나 BC 332년 그리스 알렉산더 대왕이 난공불락과도 같았던 두로를 침공하기 위해 폭 60m 에 가까운 다리를 6개월간 건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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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로(Tyre)는 시리아의 고대 도시이다. 고대 당시 찬란한 영화를 간직한 두로는 섬이었던 도시이다. 두로는 베니게의 중요한 해안 도시로 시돈에서 남쪽으로 40km 지점에 위치해 있는 곳이다. 두로는 고대에 세워진 도시로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BC 2800년경에 세워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베니게는 항해, 조선술이 발달해 해상무역을 장악했던 해양국으로 국제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사 23:8). 분류:티레 분류:두로두로의 주산물로는 자색 염료, 금속 세공, 유리 기구 등의 제조로 유명하였는데 두로의 배들은 애굽, 구브로, 로도스, 시실리, 북아프리카의 식민지들과 다시스를 항해하며 자색 물들인 옷감과 재목, 밀, 기름, 포도주, 금속, 노예, 말 등을 수출하여 두로에 엄청난 부를 가져왔다(대상 22:4; 겔 27:3; 사 23:18). 두로는 신약 시대에도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였으며 동서 문화의 교차로 역할을 하였다. 636년 아랍에 의해 정복되었고 지금은 ‘수르’라는 작은 도시로 남아 있다. 정치적, 지리적 면에서 두로는 지리적, 산업적 여건 때문에 힘 있는 나라들의 침입을 자주 받았다.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 1세에게 공격 받았으며(BC 1094) 솔로몬 때는 백향목과 잣나무를 보내 성전을 짓는데 도움을 주었고(왕상 5:1~10), 두로 사람 히람 1세은 성전의 놋기둥과 바다, 제사용 기물과 성전 기구들을 만들었다(왕상 7:13~47). 이에 대한 보답으로 솔로몬은 갈릴리 20개 성읍을 히람 왕에게 주었으나 그는 흡족해 하지 않았다(왕상 9:11~14). 히람은 솔로몬 왕이 에시온게벨에서 배를 만들자 바다에 익숙한 사공을 보내어 오빌의 금을 실어 솔로몬 왕에게 가져가도록 하였다(왕상 9:26~28). 두로 왕 엣바알은 그의 딸 이세벨을 아합과 정략 결혼하게 했으며(왕상 16:31), 이세벨은 두로의 우상을 들여와 이스라엘이 바알과 아세라 숭배에 빠지게 하였다(왕상 16:31-33). 살만에셀 3세 때는 조공을 바쳐야 했다(BC 853). 계속해서 디글랏 빌레셀 3세와 살만에셀 5세에 의해 공격을 받았으나 완전히 정복당하지 않고 결국 BC 722년 앗수르와 평화조약을 체결하였다. 그러나 앗수르 왕 산헤립에 의해 베니게가 정복당하고 에살핫돈에 의해 시돈이 정복당하자 두로의 바알 왕은 에살핫돈과 협정을 맺고 조공을 바치게 되었다. 그 후 신 바벨론 제국에 의해 계속 공격을 받았으며, 느부갓네살이 13년 동안이나 두로를 포위하며 공격하자 두로는 이때 힘을 상실하였다. BC 539년 바사의 고레스가 바벨론을 정복했을 때 두로도 그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두로는 여전히 백향목과 다른 생산품들을 수출하며 무역과 해운업을 계속하였다. 알렉산더에 의해 완전히 정복당했지만 알렉산더를 이은 셀류쿠스 왕조 때에는 이전과 같이 무역과 산업이 활발한 도시가 되었다. BC 126년 두로는 다시 독립하였으며 로마의 폼페이우스에 의해 정복당했을 때(BC 64)도 계속 독립된 상태를 유지하였다. 오므리의 행적가운데 특이한 것이 하나 있는데 그의 아들 아합과 당시의 경제 대국 두로와 시돈(페니키아)의 공주 이세벨을 결혼시킨 일이다. 솔로몬 시대 국제 정치의 꽃(?)인 정략결혼이 오므리 왕조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해상 경제 대국 페니키아의 공주 이세벨은 구약성경에서 악명 높은 여성으로 유명하다. 자기나라의 우상인 바알(Baal)과 아세라(Asherah)를 북 이스라엘 전체에게 퍼트리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 같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 위급한 상황에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 선지자를 보내셔야만 했다. 그러나 BC 332년 그리스 알렉산더 대왕이 난공불락과도 같았던 두로를 침공하기 위해 폭 60m 에 가까운 다리를 6개월간 건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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