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 대처 (Margaret Hilda Thatcher, 1925년 10월 13일 - ) 는 영국의 정치인이다. 1979년부터 11년 간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로 재임했다. 그녀가 펼친 정책은 흔히 대처리즘이라고 표현되는데 동시대의 정치 외교적 동지였던 미국 레이건 대통령의 정책과 많은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철저한 반공주의를 추구하였고 그래서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도 소련에 의해 지어졌다. 경제적으로는 과감한 시장주의 경제를 도입하여 영국을 영국병으로부터 구하고자 하였다. 장기간 이어진 석탄 노동자 파업을 진압하고 주요 국영 기업을 민영화였으며 사회 복지 혜택을 감축하였다. 외교적으로는 영국의 유럽 공동체 가입에 적대적이었으며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 전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녀의 정책은 토니 블레어 총리 시절의 영국의 경제 호황의 밑바탕이 되었다고 흔히 인정받고 있으나 반대자들로부터는 빈부 및 지역 격차, 영국 제조업의 붕괴를 초래했다고 비판받고 있다. 또한 대처의 경제개혁정책은 당시 영국의 경제문제를 뿌리부터 해소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마거릿 대처 (Margaret Hilda Thatcher, 1925년 10월 13일 - ) 는 영국의 정치인이다. 1979년부터 11년 간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로 재임했다. 그녀가 펼친 정책은 흔히 대처리즘이라고 표현되는데 동시대의 정치 외교적 동지였던 미국 레이건 대통령의 정책과 많은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철저한 반공주의를 추구하였고 그래서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도 소련에 의해 지어졌다. 경제적으로는 과감한 시장주의 경제를 도입하여 영국을 영국병으로부터 구하고자 하였다. 장기간 이어진 석탄 노동자 파업을 진압하고 주요 국영 기업을 민영화였으며 사회 복지 혜택을 감축하였다. 외교적으로는 영국의 유럽 공동체 가입에 적대적이었으며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 전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녀의 정책은 토니 블레어 총리 시절의 영국의 경제 호황의 밑바탕이 되었다고 흔히 인정받고 있으나 반대자들로부터는 빈부 및 지역 격차, 영국 제조업의 붕괴를 초래했다고 비판받고 있다. 또한 대처의 경제개혁정책은 당시 영국의 경제문제를 뿌리부터 해소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