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당의 난은 고려 명종 때 문신 김보당이 무인정권에 항거하여 일으킨 난이다. 계사년(癸巳年:1173)에 일어났으므로 '계사의 난'이라고도 한다. 이 사건은 1173년 8월 동북면 병마사로 있던 문신 김보당이 정중부, 이의방 등의 무신정권에 반발하여 서경을 중심으로 군사를 일으키면서 시작되었다. 김보당의 난에 참여한 세력들은 대부분 동북면병마사 휘하의 관리들이었다. 김보당은 정중부와 이의방을 제거하고 의종을 복위시키려 했다. 2003년 6월 1일 일요일 명종은 김보당의 난을 진압하는데 공이 큰 장군들을 치하하고 연회를 베푼다. 김보당의 난으로 많은 문신들이 척결되자 정증부와 이의방의 무신정권 타도를 외치며 서경 유수 조위총의 난을 일으켰다. 1174년에 일어난 이 사건은 김보당의 난에 비해 규모가 매우 컸다. 분류:고려
김보당의 난은 고려 명종 때 문신 김보당이 무인정권에 항거하여 일으킨 난이다. 계사년(癸巳年:1173)에 일어났으므로 '계사의 난'이라고도 한다. 이 사건은 1173년 8월 동북면 병마사로 있던 문신 김보당이 정중부, 이의방 등의 무신정권에 반발하여 서경을 중심으로 군사를 일으키면서 시작되었다. 김보당의 난에 참여한 세력들은 대부분 동북면병마사 휘하의 관리들이었다. 김보당은 정중부와 이의방을 제거하고 의종을 복위시키려 했다. 김보당은 전통 있는 문신 귀족가문 출신이었지만, 의종의 정치에 비판적이어서 처음에는 무인정권에 참여했다. 그러나 무인정권이 수립된 뒤 정치질서가 더욱 문란해지자 집권무인에 대한 반대입장으로 돌아섰고, 그로 인해 중앙의 정치무대에서 축출되어 동북면병마사(東北面兵馬使)로 나가게 되었다. 김보당은 동북면의 병권을 맡게 된 것을 기화로 병마녹사(兵馬錄事) 장순석(張純錫)·이경직(李敬直)과 모의하여 1173년(명종 3) 8월에 정중부(鄭仲夫)·이의방(李義方) 토벌과 의종(毅宗)의 복위를 외치며 군사를 일으켰다. 장순석과 유인준(柳寅俊)은 수백 명의 군사를 이끌고 거제(巨濟)로 가서 의종을 받들고 경주로 나와 웅거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정중부가 보낸 토벌군에게 모두 패하고 살해당했다. 김보당은 안북도호부에서 붙잡혀 개경으로 이송되어 죽었고, 의종은 경주에서 이의민(李義旼)에게 참혹하게 살해당함으로써 이 난은 3개월 만에 완전히 진압되었다. 또한 김보당이 죽으면서 이 일에 문신이 모두 가담했다고 말하여 많은 문신이 살해당했다. 2003년 6월 1일 일요일 명종은 김보당의 난을 진압하는데 공이 큰 장군들을 치하하고 연회를 베푼다. 김보당의 난으로 많은 문신들이 척결되자 정증부와 이의방의 무신정권 타도를 외치며 서경 유수 조위총의 난을 일으켰다. 1174년에 일어난 이 사건은 김보당의 난에 비해 규모가 매우 컸다. 분류:고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