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화는 1929년 경북 금릉 출생. 1947년 7월 현 육군사관학교 전신인 조선경비대사관학교를 입학해 다음 해 4월, 사관학교 5기생으로 소위 임관하였다. 정승화 총장은 바로 옆 건물쪽에서(대통령 만찬장) 수십발의 총성을 듣고도 별로 심각하게 생각 안하고 무슨 총소리 인지 알아보라고 말한뒤, 그대로 저녁을 계속하고, 12.12 사태는 제5공화국 수립에 출발점이 됐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한남동 공관 지역에서 육군 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 정승화 대장을 연행하는 신군부, 정승화 장군의 전두환 장군 거세 예정일이 12월 13일이었기에 모든 것이 12일에 결정되어야 하는 충돌이 마침내 생겼다. 여기서 장교들은 일제히 전두환 장군 편에 섰다. 정승화 총장을 연행하여 수사하겠다는 합동수사본부의 수사계획은 당시 계엄법에 의한 것으로 전혀 법적으로 문제 될것이 없고 정당하고 합법적인 수사 행위이다. 신군부 세력은 이듬해인 1980년 1월 20일자로 정승화 추종세력인 이건영 3군사령관과 정병주·장태완 등을 모두 예편시키고 정승화 참모총장에게는 징역 10년형을 선고했다.
정승화는 1929년 경북 금릉 출생. 1947년 7월 현 육군사관학교 전신인 조선경비대사관학교를 입학해 다음 해 4월, 사관학교 5기생으로 소위 임관하였다. 정승화 총장은 바로 옆 건물쪽에서(대통령 만찬장) 수십발의 총성을 듣고도 별로 심각하게 생각 안하고 무슨 총소리 인지 알아보라고 말한뒤, 그대로 저녁을 계속하고, 12.12 사태는 제5공화국 수립에 출발점이 됐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한남동 공관 지역에서 육군 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 정승화 대장을 연행하는 신군부, 정승화 장군의 전두환 장군 거세 예정일이 12월 13일이었기에 모든 것이 12일에 결정되어야 하는 충돌이 마침내 생겼다. 여기서 장교들은 일제히 전두환 장군 편에 섰다. 정승화 총장을 연행하여 수사하겠다는 합동수사본부의 수사계획은 당시 계엄법에 의한 것으로 전혀 법적으로 문제 될것이 없고 정당하고 합법적인 수사 행위이다. 신군부 세력은 이듬해인 1980년 1월 20일자로 정승화 추종세력인 이건영 3군사령관과 정병주·장태완 등을 모두 예편시키고 정승화 참모총장에게는 징역 10년형을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