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네일|바이에른의 이자보 바이에른의 이자보(Isabeau de Bavière, 1370년? ~ 1435년 9월 24일)은 프랑스의 군주 샤를 6세의 왕비이다. 비텔스바흐 가의 바이에른 공 슈테판 3세의 딸로 독일식 이름은 엘리자베트 폰 바이에른(Elisabeth von Bayern)이다. 1385년 7월 17일 샤를 6세와 결혼하여 20년간 12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남편의 정신병으로 인해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시동생인 오를레앙 공 루이와 공공연한 불륜 관계에 있었으며, 그가 암살된 후에는 아르마냐크 백작에 의해 추방되어 아르마냐크파와 대립하던 부르고뉴 공작 장 1세과 결탁했다. 1420년 트루아 조약에 서명하여 자신의 딸 카트린느와 결혼한 헨리 5세의 프랑스 왕위계승권을 인정했다. 이 조약에도 불구하고 아들 샤를은 아르마냐크파와 함께 전쟁을 계속하여 1422년 프랑스의 왕위에 올랐다.
섬네일|바이에른의 이자보 바이에른의 이자보(Isabeau de Bavière, 1370년? ~ 1435년 9월 24일)은 프랑스의 군주 샤를 6세의 왕비이다. 비텔스바흐 가의 바이에른 공 슈테판 3세의 딸로 독일식 이름은 엘리자베트 폰 바이에른(Elisabeth von Bayern)이다. 1385년 7월 17일 샤를 6세와 결혼하여 20년간 12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남편의 정신병으로 인해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시동생인 오를레앙 공 루이와 공공연한 불륜 관계에 있었으며, 그가 암살된 후에는 아르마냐크 백작에 의해 추방되어 아르마냐크파와 대립하던 부르고뉴 공작 장 1세과 결탁했다. 1420년 트루아 조약에 서명하여 자신의 딸 카트린느와 결혼한 헨리 5세의 프랑스 왕위계승권을 인정했다. 이 조약에도 불구하고 아들 샤를은 아르마냐크파와 함께 전쟁을 계속하여 1422년 프랑스의 왕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