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지주(斗只州) 또는 또띠주는 고조선의 지명이였다. 신라와 가야 이전에는 우두(牛頭)와 관련된 지명은 바로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이다. 기원전 2173년 두지주 예읍의 추장 소시모리가 반란을 일으키니 여수기가 잡아 죽였다. 가륵(BC 2,182~ BC2,137) 2,173 년 무신 9년 두지주의 예읍이 반란을 일으켜 여수기에게 명하여 그 추장 소시모리를 베게 하였다. 이때부터 그땅을 소시모리로 하였다. 소시모리의 후손 중에 국상입존이 기원전 1100년경 한반도에서 일본열도로 건너간 도래인이다. 협야노가 바다로 도망가서 일본땅을 차지했다. 신무의 선대는 단군조선 두지주 예읍의 추장이던 소시모리의 후손이라 단정하는 이유는, 천조대신의 신궁에 소장된 문헌에 "두지도리"라는 글이 있기 때문이다. 이세 신궁은 파도가 치는 바다에 가까운 곳으로 시냇물이 흐르는 곳에 있다. 두디도리는 단구조선의 두지주의 추장을 가리킨다. 즉 두지주 예읍의 추장 소시모리의 후손이라는 뜻이다. 두지주는 한국으로 치면 고스돕에 해당하는 중국의 국민 게임이라고 할수 있다 분류:고조선 분류:소시모리
두지주(斗只州) 또는 또띠주는 고조선의 지명이였다. 신라와 가야 이전에는 우두(牛頭)와 관련된 지명은 바로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이다. 기원전 2173년 두지주 예읍의 추장 소시모리가 반란을 일으키니 여수기가 잡아 죽였다. 가륵(BC 2,182~ BC2,137) 2,173 년 무신 9년 두지주의 예읍이 반란을 일으켜 여수기에게 명하여 그 추장 소시모리를 베게 하였다. 이때부터 그땅을 소시모리로 하였다. 소시모리의 후손 중에 국상입존이 기원전 1100년경 한반도에서 일본열도로 건너간 도래인이다. 협야노가 바다로 도망가서 일본땅을 차지했다. 신무의 선대는 단군조선 두지주 예읍의 추장이던 소시모리의 후손이라 단정하는 이유는, 천조대신의 신궁에 소장된 문헌에 "두지도리"라는 글이 있기 때문이다. 이세 신궁은 파도가 치는 바다에 가까운 곳으로 시냇물이 흐르는 곳에 있다. 두디도리는 단구조선의 두지주의 추장을 가리킨다. 즉 두지주 예읍의 추장 소시모리의 후손이라는 뜻이다. 두지주는 한국으로 치면 고스돕에 해당하는 중국의 국민 게임이라고 할수 있다 분류:고조선 분류:소시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