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명왕(瑠璃明王, 기원전 38년 ~ 기원후 18년)은 고구려의 제2대 왕(재위 : 기원전 19년 - 기원후 18년)으로 휘는 유리(榴璃 또는 類利) 또는 유류(孺留)이다. 동명성왕과 왕후 예씨의 맏아들이다. 기원전 3년에 졸본에서 수도를 위나암(국내성)으로 옮겼고, 계비 치희를 그리워해서 지었다는 황조가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재위 33년인 서기 14년에 무휼을 태자로 삼았고, 2만 명의 군대와 오이와 마리 장군을 보내 서쪽의 양맥(梁貊)을 치고, 또 현도군의 고구려현(高句麗縣 또는 高句驪縣)을 쳐서 복속시켰다.
유리명왕(瑠璃明王, 기원전 38년 ~ 기원후 18년)은 고구려의 제2대 왕(재위 : 기원전 19년 - 기원후 18년)으로 휘는 유리(榴璃 또는 類利) 또는 유류(孺留)이다. 동명성왕과 왕후 예씨의 맏아들이다. 기원전 3년에 졸본에서 수도를 위나암(국내성)으로 옮겼고, 계비 치희를 그리워해서 지었다는 황조가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재위 33년인 서기 14년에 무휼을 태자로 삼았고, 2만 명의 군대와 오이와 마리 장군을 보내 서쪽의 양맥(梁貊)을 치고, 또 현도군의 고구려현(高句麗縣 또는 高句驪縣)을 쳐서 복속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