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리우스 [Olybrius,?~ 472. 11. 2]는 서로마의 황제(472. 4~11 재위)이다. 황제가 되기 전에는 부유한 원로원 의원이었다. 서로마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3세(425~455 재위)의 딸 플라키디아와 결혼했다. 북아프리카에 게르만 왕국을 세운 반달족의 왕 가이세리크는 올리브리우스가 서로마 황제가 되기를 원했으나, 이때문에 동로마 황제 레오 1세는 올리브리우스를 의심하게 되었다. 레오는 올리브리우스를 콘스탄티노플에서 로마로 보내면서 당시 서로마 황제 안테미우스에게 살해되기를 은근히 바랐다. 그러나 황제 옹립자라는 별명을 가진 로마의 장군 플라비우스 리키메르는 올리브리우스가 472년 4월에 도착하자마자 그를 제위에 앉혔으며 안테미우스는 472년 7월 살해되었다. 리키메르는 안테미우스를 폐위시키고 472년 4월에 올리브리우스 (Olybrius)를 황제로 추대하였다. 안테미우스는 리키메르에게 붙잡혀 472년 7월 11일에 참수형을 당하였다. 그러나 리키메르는 그해 8월에 죽었고 허수아비 황제 올리브리우스도 11월에 죽었다. 레오는 올리브리우스를 정통 황제로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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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리우스 [Olybrius,?~ 472. 11. 2]는 서로마의 황제(472. 4~11 재위)이다. 황제가 되기 전에는 부유한 원로원 의원이었다. 서로마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3세(425~455 재위)의 딸 플라키디아와 결혼했다. 북아프리카에 게르만 왕국을 세운 반달족의 왕 가이세리크는 올리브리우스가 서로마 황제가 되기를 원했으나, 이때문에 동로마 황제 레오 1세는 올리브리우스를 의심하게 되었다. 레오는 올리브리우스를 콘스탄티노플에서 로마로 보내면서 당시 서로마 황제 안테미우스에게 살해되기를 은근히 바랐다. 그러나 황제 옹립자라는 별명을 가진 로마의 장군 플라비우스 리키메르는 올리브리우스가 472년 4월에 도착하자마자 그를 제위에 앉혔으며 안테미우스는 472년 7월 살해되었다. 리키메르는 안테미우스를 폐위시키고 472년 4월에 올리브리우스 (Olybrius)를 황제로 추대하였다. 안테미우스는 리키메르에게 붙잡혀 472년 7월 11일에 참수형을 당하였다. 그러나 리키메르는 그해 8월에 죽었고 허수아비 황제 올리브리우스도 11월에 죽었다. 레오는 올리브리우스를 정통 황제로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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