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보륵 또는 을보록은 고조선 3세 단군 가륵의 삼랑으로 한글의 원형인 정음38자 가림토 문자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단제 가륵은 작은 마을에서도 서로 말이 통하지 아니하고, 나라 땅에서도 통하지 아니하므로 삼랑 을보록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만들게 하니 이를 가림토(加臨土 : 加臨多)라 하였다. 이 가림토(加臨土)의 흔적이 한글이고 일본 열도에도 구주신사의 비석과 이세신궁에 남아 있다. 당시에 신지인 고을에 의해 배달유기가 편수되었다. 한글은 세종대왕의 독창적인 창조물이 아니라 단군시대 문자는 3대 갸륵 단군(기원전 2181년)대 삼랑 을보록이 만든‘가림토 문자’를 중심으로 한글이 오늘날 사용하는 훈민정음(訓民正音) 28자로 재 창제되었다고 한단고기는 주장한다.
을보륵 또는 을보록은 고조선 3세 단군 가륵의 삼랑으로 한글의 원형인 정음38자 가림토 문자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단제 가륵은 작은 마을에서도 서로 말이 통하지 아니하고, 나라 땅에서도 통하지 아니하므로 삼랑 을보록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만들게 하니 이를 가림토(加臨土 : 加臨多)라 하였다. 이 가림토(加臨土)의 흔적이 한글이고 일본 열도에도 구주신사의 비석과 이세신궁에 남아 있다. 당시에 신지인 고을에 의해 배달유기가 편수되었다. 한글은 세종대왕의 독창적인 창조물이 아니라 단군시대 문자는 3대 갸륵 단군(기원전 2181년)대 삼랑 을보록이 만든‘가림토 문자’를 중심으로 한글이 오늘날 사용하는 훈민정음(訓民正音) 28자로 재 창제되었다고 한단고기는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