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스 2세[630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 668. 9. 15 시칠리아 시라쿠사]는 비잔틴 제국의 황제이다. 그의 재위기간에 비잔틴의 남부지방과 동부지방이 아랍인에게 넘어갔다. 황제 콘스탄티누스 3세의 아들이었던 그는 아버지가 죽은 뒤 641년 11세의 나이로 제위에 올랐다. 발렌티누스는 그들이 통치자감으로 부적합하게 만들기 위해 마르티나의 혀 일부를 잘라내고 헤라클로나스의 코도 일부 베어냈다. 콘스탄티누스의 아들을 콘스탄스 2세로 즉위시킨 뒤, 장군은 자신의 딸을 미성년자인 황제에게 시집보낸다. 642년에 아랍 이슬람 교도들은 비잔틴 제국으로부터 이집트를 빼앗고 647년에는 아르메니아를 침략했다. 655년 그는 함대를 지휘해 소아시아 근해에서 아랍인들과 싸웠으나 완패했고 자신은 겨우 한 병사의 영웅적 행위로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656년 6월 칼리프 우트만 이븐 아판의 살해 사건은 아랍인들 사이에 내란을 불러일으켰으며 콘스탄티노플은 아랍인들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659년 콘스탄스는 시리아의 아랍인 총독과 불가침 조약을 체결했다. 신학적 분규로 제국이 분열되자 그의 대내 정책은 교회 통일에 중점을 두었다.
콘스탄스 2세[630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 668. 9. 15 시칠리아 시라쿠사]는 비잔틴 제국의 황제이다. 그의 재위기간에 비잔틴의 남부지방과 동부지방이 아랍인에게 넘어갔다. 황제 콘스탄티누스 3세의 아들이었던 그는 아버지가 죽은 뒤 641년 11세의 나이로 제위에 올랐다. 발렌티누스는 그들이 통치자감으로 부적합하게 만들기 위해 마르티나의 혀 일부를 잘라내고 헤라클로나스의 코도 일부 베어냈다. 콘스탄티누스의 아들을 콘스탄스 2세로 즉위시킨 뒤, 장군은 자신의 딸을 미성년자인 황제에게 시집보낸다. 642년에 아랍 이슬람 교도들은 비잔틴 제국으로부터 이집트를 빼앗고 647년에는 아르메니아를 침략했다. 655년 그는 함대를 지휘해 소아시아 근해에서 아랍인들과 싸웠으나 완패했고 자신은 겨우 한 병사의 영웅적 행위로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656년 6월 칼리프 우트만 이븐 아판의 살해 사건은 아랍인들 사이에 내란을 불러일으켰으며 콘스탄티노플은 아랍인들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659년 콘스탄스는 시리아의 아랍인 총독과 불가침 조약을 체결했다. 신학적 분규로 제국이 분열되자 그의 대내 정책은 교회 통일에 중점을 두었다. 648년 티포스라는 칙령을 발표해 말썽 많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관한 논란을 금지시켰다. 교황 마르티누스 1세가 티포스를 비난하자 동서(東西)를 망라하는 하나의 로마 제국이라는 옛날의 인식을 지니고 있던 콘스탄스는 653년 교황을 체포해 유배시켰다. 그 다음 해에는 아들 콘스탄티누스를 공동황제로 삼아 형제 테오도시우스를 계승권에서 제외시켰고 659년 콘스탄스는 시리아의 아랍인 총독과 불가침 조약을 체결했다. 660년에는 그를 살해하도록 했다. 형제 살해죄로 신하들의 미움을 사게 되자 663년 콘스탄티노플을 떠나 서쪽으로 여행하며 북부 이탈리아를 지나 로마로 갔다가 시칠리아의 시라쿠사에 정착했다. 668년 동로마 제국 황제 콘스탄스 2세가 이탈리아 시라쿠사에서 욕실에서 암살당하였다. 아랍인들의 침략에 대항해 서로마를 수호하기 위해 시라쿠사를 영원한 수도이자 전략 중심지로 만들어 보려던 계획은 그의 암살로 중단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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