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줄 또는 불굴은 후직의 아들이였다. 후직이 불줄(不窋)을 낳고, 불줄이 국(鞠)을 낳았다. 순임금은 후직의 공로를 표창해 태(邰)라는 고을을 주고 희성(姬姓)을 하사한다. 그러므로 주족은 희성(姬姓)이다. 불줄 말년에 하후씨의 정치가 문란하게 되어 농사(農師)의 관직을 폐하여 다시는 농사(農事)의 일을 돌보지 않았다. 후직이 하우씨(夏禹氏)때까지 살다죽고 그 아들 불줄(不茁)이 뒤를 이었다. 당시에 경수(涇水)와 위수 일대에는 융적(戎狄)이 살고 있었다. 희기의 아들 희불굴(姬不窟)은 관직을 잃고 융적의 마을에 숨어 살았다. 이 무렵 하(夏)나라의 정치가 쇠퇴하여 불줄(不茁)은 그 벼슬을 잃고 융적(戎狄)의 나라로 도망갔다.
불줄 또는 불굴은 후직의 아들이였다. 후직이 불줄(不窋)을 낳고, 불줄이 국(鞠)을 낳았다. 순임금은 후직의 공로를 표창해 태(邰)라는 고을을 주고 희성(姬姓)을 하사한다. 그러므로 주족은 희성(姬姓)이다. 불줄 말년에 하후씨의 정치가 문란하게 되어 농사(農師)의 관직을 폐하여 다시는 농사(農事)의 일을 돌보지 않았다. 후직이 하우씨(夏禹氏)때까지 살다죽고 그 아들 불줄(不茁)이 뒤를 이었다. 당시에 경수(涇水)와 위수 일대에는 융적(戎狄)이 살고 있었다. 희기의 아들 희불굴(姬不窟)은 관직을 잃고 융적의 마을에 숨어 살았다. 이 무렵 하(夏)나라의 정치가 쇠퇴하여 불줄(不茁)은 그 벼슬을 잃고 융적(戎狄)의 나라로 도망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