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ributes | Values |
---|
rdfs:label
| |
rdfs:comment
| - 일성 이사금(逸聖尼師今)은 신라의 제7대 왕(134~154 재위)이였다. 유리 이사금의 맏아들이며, 왕비는 박씨로 지소례왕(支所禮王)의 딸이다. 80년 9월 제4대 탈해왕(脫解王;재위57-80년)이 죽자, 유리왕의 태자 일성(逸聖;뒤에 일성 이사금)이 왕위를 계승하여야 했으나 현명하지 못하여 신하들이 파사왕을 옹립하였다. 일성이 7대 왕에 올라 지마왕을 국도 남쪽 10리 포석정 건지동 을좌언덕에 장사를 지냈다. 망명객의 한을 품고 여든 살에 왕위에 오른 천일창 유리왕의 적장자(후손)인 일성(逸聖)왕은 유리왕이 죽은 후 77년이나 지난 뒤에 왕위에 올랐다. 천일창은 단마국의 출도(出島) 사람 태이(太耳)의 딸 마다오(麻多烏)에게 장가들어서 단마제조(但馬諸助)를 낳았다. 단마제조는 단마일삼저(但馬日三杵)를 낳았고, 단마일삼저는 청언(淸彦)을 낳았고, 청언은 전도간수(田道間守)를 낳았다. 전도간수는 수인 천황 90년(61, 탈해왕5) 봄에 칙서를 받들고 신라에 도착해서 귤나무를 가지고 돌아온 자이다. 백성들은 농사를 근본으로 삼고 그뒤 신라의 제8대 임금은 일성 이사금의 맏아들인 아달라가 되었는데, 일성 이사금이 세상을 뜨자 서기154년, 왕위에 올랐다.
|
dcterms:subject
| |
dbkwik:ko.history/...iPageUsesTemplate
| |
abstract
| - 일성 이사금(逸聖尼師今)은 신라의 제7대 왕(134~154 재위)이였다. 유리 이사금의 맏아들이며, 왕비는 박씨로 지소례왕(支所禮王)의 딸이다. 80년 9월 제4대 탈해왕(脫解王;재위57-80년)이 죽자, 유리왕의 태자 일성(逸聖;뒤에 일성 이사금)이 왕위를 계승하여야 했으나 현명하지 못하여 신하들이 파사왕을 옹립하였다. 일성이 7대 왕에 올라 지마왕을 국도 남쪽 10리 포석정 건지동 을좌언덕에 장사를 지냈다. 망명객의 한을 품고 여든 살에 왕위에 오른 천일창 유리왕의 적장자(후손)인 일성(逸聖)왕은 유리왕이 죽은 후 77년이나 지난 뒤에 왕위에 올랐다. 천일창은 단마국의 출도(出島) 사람 태이(太耳)의 딸 마다오(麻多烏)에게 장가들어서 단마제조(但馬諸助)를 낳았다. 단마제조는 단마일삼저(但馬日三杵)를 낳았고, 단마일삼저는 청언(淸彦)을 낳았고, 청언은 전도간수(田道間守)를 낳았다. 전도간수는 수인 천황 90년(61, 탈해왕5) 봄에 칙서를 받들고 신라에 도착해서 귤나무를 가지고 돌아온 자이다. 말갈족의 침입을 자주 받아 국력의 소모가 심하였는데, 농사를 장려하여 제방을 수축하고 전지(田地)를 개간하는 등 농정에 힘썼다. 신라 일성이사금 6년(139년) 7월에 서리가 와서 콩이 모두 상했다는 기록이 있다. 15년(AD148) 박아도(朴阿道)를 갈문왕으로 봉했다. 백성들은 농사를 근본으로 삼고 그뒤 신라의 제8대 임금은 일성 이사금의 맏아들인 아달라가 되었는데, 일성 이사금이 세상을 뜨자 서기154년, 왕위에 올랐다.
|
is dbkwik:resource/Xkqod-ZX8EfN48jzdAyBwQ==
of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