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bstract
| -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자유민과 노예, 귀족과 평민, 영주와 농노, 길드 장인과 직인, 한 마디로 억압자와 피억압자는 항상 서로 대립하면서 때로는 숨겨진, 때로는 공공연한 싸움을 벌였다. 그리고 각각의 싸움은 그때마다 대대적인 사회의 혁명적 재편 또는 경쟁하는 계급들의 공동 파멸로 끝이 났다. 이전의 역사적 시대에서는 거의 모든 곳에서 사회가 다양한 질서, 잡다한 사회적 서열의 등급으로 복잡하게 배열되어 있었던 것을 볼 수 있다. 고대 로마에는 귀족, 기사, 평민, 노예가 있었고, 중세에는 봉건 영주, 가신, 길드 장인, 직인, 도제, 농노가 있었다. 이들 계급의 거의 대부분은 또다시 부수적인 등급들로 나누어져 있었다. 봉건사회의 폐허로부터 싹튼 현대 부르주아 사회는 계급 적대를 없애지 못했다. 단지 낡은 것들 대신 새로운 계급, 새로운 억압의 조건, 새로운 투쟁 형태들을 만들어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 시대, 부르주아의 시대는 명확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즉 계급 적대를 단순화시킨 것이다. 전체 사회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라는 양대의 적대적 진형으로, 서로 직면하고 있는 양대 계급으로 점점 더 분열되어가고 있다. 중세 농노로부터 초기 도시의 시민이 생겨났으며, 이 시민으로부터 부르주아의 최초 분자들이 발전해 나왔다. 아메리카의 발견, 케이프 항로의 발견은 떠오르는 부르주아를 위한 신선한 기반을 만들어주었다. 동인도와 중국의 시장, 아메리카의 식민지화, 식민지와의 무역, 교환수단과 상품의 전반적인 증가는 상업과 해운업 및 공업에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충격을 주었으며, 또한 그럼으로써 비틀거리는 봉건사회 내의 혁명적 요소에게는 급속한 발전을 가져다주었다. 폐쇄적인 길드가 산업 생산을 독점하고 있던 봉건적 산업 체계는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시장의 늘어나는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이를 대신한 것이 곧 매뉴팩처 체계였다. 길드 장인은 매뉴팩처 중간 계급에 의해 밀려났으며, 서로 다른 자치적 길드들 간의 분업은 사라지고 각 공장 내에서의 분업이 들어서게 되었다. 그러는 가운데 시장은 꾸준히 성장했으며, 수요 또한 계속 상승하고 있었다. 그래서 매뉴팩처조차도 이제 불충분한 것이 되었다. 또한 증기와 기계가 산업 생산을 혁명적으로 발전시켰다. 매뉴팩처의 위치는 거대한 현대 산업으로 대체되고 산업 중간 계급의 위치는 산업 백만장자, 전체 산업부대의 지휘관, 현대 부르주아가 차지하게 되었다. 현대 산업은 아메리카의 발견으로 길이 트인 세계 시장을 확립했다. 세계 시장은 상업, 해운업, 육상 교통의 엄청난 발전을 가져다주었다. 이러한 발전은 거꾸로 산업의 확장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즉 공업, 상업, 해운업, 철도가 확작되는 것과 동일한 비율로 부르주아는 발전했으며, 자신의 자본을 증가시켰고, 중세 시대로부터 이어내려온 모든 계급을 뒷전으로 밀어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현대 부르주아 자체가 긴 발전 과정의 산물이며, 생산 양식과 교환 양식에서의 일련의 혁명이 낳은 산물임을 알 수 있다. 부르주아의 각 발전 단계에는 그에 상응하는 부르주아의 정치적 진보가 뒤따랐다. 봉건 귀족의 지배 하에서는 피억압계급으로, 중세 코뮨에서는 무장 자치 단체―어느 곳에서는 자립적 도시 공화국 (이탈리아와 독일), 또 어느 곳에서는 군주의 과세대상인 "제3신분" (프랑스)―로 있던 부르주아는 이후 매뉴팩처 시기에는 귀족에 대한 대항 세력으로서, 사실상 일반적으로는 대군주들의 초석으로서 반(半)봉건군주 또는 절대군주에 봉사했으며, 현대 산업과 세계 시장이 확립되면서부터는 마침내 스스로의 힘으로 현대의 대의제 국가에서 배타적인 정치적 지배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현대 국가의 집행 기구는 단지 전체 부르주아의 공동사를 관리하는 위원회일 뿐이다. 역사적으로 부르주아는 매우 혁명적인 역할을 담당해왔다. 부르주아는 자신이 지배를 확립한 곳에서는 어디서나 모든 봉건적·가부장적·전원적 관계를 종식시켜왔다. 부르주아는 인간을 "태생적 상하 관계"에 묶어놓는 잡다한 봉건적 끈을 가차없이 끊어버렸으며, 그 외의 모든 인간의 관계를 적나라한 이기심, 냉혹한 "현금 지불 관계"로만 만들어놓았다. 또한 가장 신성한 종교적 정열의 환희, 기사도적 열정의 환희, 세속적 감상주의의 환희를 자기중심적 타산이라는 얼음같이 차디찬 물 속에 빠뜨려버렸다. 또, 개인의 존엄성을 교환가치로 용해시켜버렸으며, 결코 무효화될 수 없이 공인된 무수한 자유 대신 저 자유무역이라는 단 하나의 파렴치한 자유를 세워놓았다. 한 마디로, 부르주아는 종교적·정치적 환상으로 가려진 착취를 적나라하고 후안무치하고 노골적이고 야수같은 착취로 대체한 것이다. 부르주아는 지금까지 존경과 경건한 경외심으로 받들어졌던 모든 직업으로부터 그 후광을 걷어냈다. 의사, 법률가, 성직자, 시인, 과학자를 자신이 보수를 주는 임금노동자로 전환시켜버린 것이다. 부르주아는 가족으로부터 그 감정의 장막을 찢어내고 가족 관계를 단순한 돈의 관계로 만들었다. 부르주아는 복고주의자들이 그토록 경애해 마지않는 중세 시대의 야수같은 힘의 과시가 어떻게 하여 가장 게으른 나태로써 훌륭히 보완되는가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인간의 행위가 과연 무엇을 낳을 수 있는가를 처음으로 보여준 예였다. 부르주아는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로마의 수도교, 고딕 양식의 성당을 훨씬 능가하는 기적을 이룩했다. 이전의 모든 민족 대이동이나 십자군 따위는 견주지도 못할 원정들을 감행한 것이다. 부르주아는 끊임없이 생산 도구를 혁명적으로 개조하고, 그럼으로써 생산 관계를 개조하며, 또 그와 더불어 사회관계 전체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다. 반면, 이전의 모든 산업 계급들에게는 낡은 생산 양식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자신의 1차 존재 조건이었다. 끊임없는 생산의 혁명적 발전, 모든 사회적 조건들의 부단한 교란, 항구적인 불안과 동요는 부르주아 시대와 이전의 모든 시대를 구분짓는 특징이다. 모든 고정되고 얼어붙은 관계들, 이와 더불어 고색창연한 편견과 견해들은 사라지고, 새로이 형성된 모든 것들은 골격을 갖추기도 전에 낡은 것이 되어버린다. 딱딱한 것은 모두 녹아서 사라지고, 신성한 것은 모두 더렵혀지며, 마침내 인간은 냉정을 되찾고 자신의 실제 생활조건, 자신과 인류의 관계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부르주아는 자신의 생산물을 팔 수 있는 시장을 끊임없이 확장시켜야 한다는 필요성으로 인해 지구 상의 모든 구석구석을 누벼야 한다. 부르주아는 가는 곳마다 둥지를 틀고 자리를 잡고 연고를 맺어야 하는 것이다. 부르주아는 세계 시장의 착취를 통하여 각 나라의 생산과 소비에 범세계적인 성격을 부여해왔다. 복고주의자들에게는 매우 유감이겠으나 부르주아는 산업의 발 밑으로부터 산업이 딛고 서 있는 일국적 기반을 빼앗아냈다. 기존에 확립된 모든 일국적 산업들은 이미 파괴되었거나 나날이 파괴되어가고 있다. 모든 문명 민족들이 생사를 걸고 도입하려 하는 새로운 산업, 이제 더 이상 토착 원료 자원을 가공하지 않고 가장 먼 곳에서 온 원료 자원을 가공하면서도 그 생산물은 국내만이 아니라 지구 상의 모든 구석에서 소비되는 새로운 산업이 그 낡은 산업들을 몰아내고 있다. 그 나라의 생산물로 충족되던 낡은 욕구 대신에, 먼 나라 먼 토양의 생산물로 충족될 수 있는 새로운 욕구가 생겨난다. 낡은 지역적·민족적 단절과 자급자족 대신 모든 방면에서의 상호 교류, 민족들 간의 보편적 상호 의존이 나타난다. 이는 물질적 생산 뿐 아니라 정신적 생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개별 민족의 지적 창조물은 공동의 재산이 된다. 민족적 편향성과 편협성은 점차 불가능해지며, 수많은 민족적·지역적 문학들로부터 하나의 세계 문학이 생겨나는 것이다. 부르주아는 모든 생산도구가 급속히 향상되고 교통수단이 엄청나게 개선됨으로써, 가장 미개한 민족을 포함하여 모든 민족을 문명화시킨다. 상품의 저렴한 가격은 모든 만리장성을 무너뜨리고 외국인에 대한 미개인의 매우 고집스런 증오를 굴복시키는 대포이다. 부르주아는 모든 민족에게 부르주아적 생산 양식을 채택할 것이냐 죽을 것이냐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며, 자기가 문명이라고 부르는 것을 도입할 것, 즉 부르주아 자체가 될 것을 강요한다. 한 마디로 부르주아는 자기 자신의 모습 그대로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부르주아는 시골을 도시의 지배에 복속시켰다. 부르주아는 거대 도시들을 만들었고, 농촌에 비해 도시 인구를 엄청나게 증가시켰으며, 이를 통해 상당 부분의 인구를 농촌 생활의 백치 상태로부터 구출해냈다. 또한 시골이 도시에 종속되도록 만든 것과 똑같이 미개국과 반(半)미개국들이 문명국들에게, 농민의 나라가 부르주아의 나라에게, 동양이 서양에게 종속되도록 만들었다. 부르주아는 인구, 생산 수단, 재산의 분산된 상태를 점차 제거하고 있다. 부르주아는 인구를 한데 뭉치고, 생산 수단을 집중시켰으며, 재산을 소수의 손에 집적시켰다. 이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로 정치적 집중이 이루어졌다. 개별적 이해관계와 법률, 정부, 조세 제도를 가지고 있던 독립적 지역 또는 그것들과 대략적으로 관련된 지역들은 하나의 정부, 하나의 법조문, 하나의 일국적 계급 이해, 하나의 국경, 하나의 관세를 지닌 하나의 나라로 뭉치게 되었다. 부르주아는 백 년 남짓한 자신의 지배 기간 동안 이전의 모든 세대들이 이루어낸 것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거대하고 엄청난 생산력을 창출했다. 인간에 대한 자연력의 복속, 기계, 공업과 농업에서의 화학의 응용, 증기선, 철도, 전기 통신, 경작을 위한 전 토지의 개간, 운하 건설, 땅에서 솟아난 듯한 거대한 인구―이전 세기에 그러한 생산력이 사회적 노동의 품 속에 잠자고 있으리라고 예감이나마 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알 수 있다. 부르주아가 딛고 서 있는 토대인 생산 수단과 교환 수단이 특정한 발전 단계에 이르자, 봉건사회가 생산하고 교환하는 조건, 농업과 제조업의 봉건적 조직, 한 마디로 말해 봉건적 소유 관계는 이미 발전되어 있는 생산력과 더 이상 양립할 수 없게 되었으며 오히려 그만큼의 질곡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것들은 산산히 부서져야 했으며, 실제로 산산히 부서져버렸다. 그 자리에는 자유 경쟁이 대신 들어섰으며, 또 자유 경쟁에 맞는 사회적·정치적 구조가 뒤따랐고, 부르주아 계급의 경제적·정치적 지배가 뒤따랐다. 지금 우리 눈 앞에도 비슷한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다. 자신의 생산 관계, 교환 관계, 소유 관계를 가지고 있는 현대 부르주아 사회, 엄청난 생산 수단과 교환 수단을 출현시킨 이 사회는 자기가 주술로 불러낸 명부(冥府)세계의 힘을 더 이상 통제하지 못하게 된 마법사와도 같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산업과 상업의 역사는 오직 현대적 생산 조건에 대한, 또 부르주아와 그 지배의 존재 조건인 소유 관계에 대한 현대적 생산력의 반란의 역사일 뿐이다. 이에 대해서는 주기적으로 일어나면서 갈수록 더 한층 위협적으로 전체 부르주아 사회의 존망을 시험대에 올려놓는 상업 공황만을 언급해도 충분할 것이다. 이러한 공황에서는 기존 생산물 뿐 아니라 이전에 창조된 생산력의 거의 대부분이 주기적으로 파괴된다. 또한 이전의 모든 시대에는 터무니없는 것으로 여겨졌을 전염병, 즉 과잉 생산의 전염병이 번지게 된다. 사회는 갑자기 순간적인 야만 상태로 되돌아가게 된다. 마치 기근이나 전면전의 황폐로 인해 모든 생존 수단의 공급이 차단된 것처럼 된다. 산업과 상업은 파괴된 듯이 보인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과도한 문명화, 과도한 생존 수단, 과도한 산업, 과도한 상업 때문이다. 사회의 수중에 있는 생산력은 더 이상 부르주아적 소유 조건을 더 한층 발전시키는 데로 향하지 않는다. 그 반대로, 생산력은 소유 조건에 비해 너무 강력해져서 오히려 그것에 의해 질곡당하며, 질곡을 극복하자마자 생산력은 부르주아 사회 전체를 무질서하게 만들고 부르주아적 소유의 존재를 위태롭게 만든다. 부르주아 사회의 여러 조건은 생산력이 만들어낸 부를 포괄하기에는 너무 협소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부르주아는 어떻게 이러한 공황을 극복하는가? 한편으로는 생산력의 대량 파괴를 강화함으로써,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장을 정복하고 기존의 시장을 더욱 철저하게 착취함으로써 극복한다. 달리 말해 그것은 보다 범위가 넓고 보다 파괴적인 공황을 위한 길을 닦으며, 공황을 예방하는 수단을 축소시키는 것이다. 부르주아가 봉건제를 무너뜨렸던 무기가 이제 부르주아 자신을 겨냥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부르주아는 자신을 죽이는 무기를 주조했을 뿐 아니라 이 무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인 현대 노동계급, 곧 프롤레타리아들도 탄생시켰다. 부르주아, 즉 자본이 발전하는 것과 똑같은 정도로 프롤레타리아, 즉 현대 노동계급도 발전한다. 이들은 일거리가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으며, 그들의 노동이 자본을 증대시키는 한에서만 일거리를 찾을 수 있다. 이들 노동자는 다른 보통 상품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을 조금씩 팔아야 하는 하나의 상품이며, 따라서 경쟁의 성패 여하에, 시장의 동요 여하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기계의 광범위한 활용과 분업으로 인해 프롤레타리아의 노동은 모든 개인적 성격을 잃었으며, 그 결과 노동자에 대한 매력도 사라졌다. 노동자는 이제 기계의 부속물이며, 그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가장 단순하고 가장 단조로우며 가장 쉽게 획득한 기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의 생산 비용은 거의 전적으로 그가 자신을 유지하고 종족을 번식시키는 데 필요한 생존 수단으로 제한된다. 그러나 상품의 가격, 곧 노동의 가격은 그 생산 비용과 같다. 그러므로 노동에 대해 느끼는 반발심이 강할수록 임금은 감소한다. 그뿐 아니라 기계의 사용과 분업이 증가할수록, 노동 시간이 연장되거나 주어진 시간 내에 강제된 노동량이 증대하거나 기계 속도가 빨라지거나 하는 등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짐 또한 증가한다. 현대 산업은 가부장적 장인의 작은 작업장을 산업 자본가의 거대한 공장으로 바꾸어놓았다. 공장으로 결집된 노동자 대중은 군대식으로 편성된다. 그들은 산업 군대의 사병(私兵)으로서 장교, 하사관으로 이루어진 완벽한 위계의 지휘 하에 있다. 그들은 부르주아 계급, 부르주아 국가의 노예일 뿐 아니라, 날이 갈수록 시간이 갈수록 기계에 의해, 관리자에 의해, 무엇보다도 개별 부르주아 공장주 자신에 의해 노예화되고 있다. 이러한 전횡은 영리가 그 목표이자 목적임을 노골적으로 선언하면 할수록 더 한층 인색해지고 증오스러워지고 쓰라린 것이 된다. 육체 노동에 필요한 기술과 발휘되는 힘이 줄어들수록, 달리 말해서 현대 산업이 발전할수록 더 한층 남성의 노동은 여성의 노동으로 대체된다. 연령과 성별의 차이는 더 이상 노동 계급에게 사회적 타당성을 가지지 못한다. 연령과 성별에 따라 사용하는 값이 다르기는 하지만 모든 사람이 노동의 도구인 것이다. 지금까지 노동자에 대한 공장주의 착취가 끝나고 노동자가 임금을 현금으로 받게되자마자 부르주아의 기타 부분, 즉 집 주인, 상점 주인, 전당포 주인 등이 노동자에게 달려든다. 소매상, 상점주, 일반적으로는 은퇴한 상인들, 수공업자와 농민 등 중간계급의 하층은 점차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한다. 왜냐하면 한편으로 그들의 영세 자본으로는 현대 산업이 움직이는 규모를 감당할 수 없고, 대자본가와의 경쟁에서 뒤처지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생산 방식으로 인해 그들의 전문화된 기술이 쓸모없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프롤레타리아는 모든 계급의 인구로부터 충원되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는 다양한 발전 단계를 거친다. 프롤레타리아가 처음 생겨나자마자 부르주아와의 투쟁도 시작된다. 처음에는 개별 노동자들이 싸움을 시작했으나 다음에는 한 공장의 근로자들이, 그 다음에는 한 직종, 한 지역의 직공들이 자신들을 직접 착취하는 개별 부르주아를 상대로 싸우게 된다. 그들은 부르주아적 생산 조건에 대해서가 아니라 생산 도구 자체에 대해서 공격을 가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노동과 경쟁하는 수입품을 쳐부수며, 기계를 산산조각내고, 공장을 불지르며, 사라져버린 중세 시대 근로자의 지위를 무력으로 회복하고자 한다. 이 단계에서 노동자는 아직 전국에 흩어져 있고 자기들 간의 상호 경쟁으로 분열되어 있는 지리멸렬한 대중에 머물러 있다. 설사 그들이 모여 보다 긴밀한 결합체를 이룬다 해도 그것은 아직 그들 자신이 연합한 결과가 아니라 부르주아가 연합한 결과이다. 부르주아 계급은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모든 프롤레타리아를 동원하지 않을 수 없으며, 게다가 아직 당분간은 그렇게 할 수 있는 힘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 단계에서 프롤레타리아는 자신의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적의 적, 즉 절대군주제의 잔재인 지주, 비산업 부르주아, 프티-부르주아와 싸우는 것이다. 이리하여 전체 역사적 운동은 부르주아의 수중에 집중된다. 그렇게 얻어진 승리는 모두 부르주아를 위한 승리인 것이다. 그러나 산업이 발전하면서 프롤레타리아는 숫자가 증가할 뿐 아니라 보다 큰 무리로 집중되어 힘이 더욱 성장하며, 그 힘을 더욱 자각하게 된다. 기계가 노동의 모든 차이들을 소멸시키고 거의 모든 곳에서 임금을 동일하게 낮은 수준으로 감축시키는 것과 비례하여 프롤레타리아 대열 내의 다양한 이해 관계와 생활 조건은 더욱 더 평준화된다. 부르주아들 간의 경쟁이 격화되고 그 결과 상업 공황이 일어나면서 노동자의 임금은 갈수록 동요하게 된다. 기계가 급속히 발전하고 끊임없이 개선되면서 노동자의 생활은 갈수록 불안정해진다. 따라서 개별 노동자와 개별 부르주아 간의 충돌은 갈수록 두 계급 간의 충돌이라는 성격을 띠게 된다. 그 결과, 노동자들은 부르주아에 반대하는 결사체 (노동조합) 를 결성하기 시작하며, 임금율을 높이기 위해 한데 뭉치고, 때때로 일어날 충돌에 대비하기 위해 단체를 창건한다. 여기저기에서 싸움은 폭동으로 터지게 된다. 때때로 노동자는 승리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잠시일 뿐이다. 싸움의 실제적 결실은 직접적인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팽창하는 노동자들의 단결에 있다. 현대 산업이 만들어낸 전달 수단으로 인해 여러 지역의 노동자들이 서로 접촉할 수 있게 됨으로써 단결은 한층 확대된다. 바로 이 접촉이야말로 같은 성격을 지니는 수많은 지역적 투쟁을 계급들 간의 하나의 전국적 투쟁으로 집중시키는 데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계급투쟁은 정치투쟁이다. 중세 시대의 시민이 옹색한 도로를 가지고 수백 년의 기간을 거쳐 달성한 그 단결을 현대 프롤레타리아는 철도에 힘 입어 수 년간에 이룩한다. 이렇게 프롤레타리아를 하나의 계급으로, 나아가 하나의 정당으로 조직하는 일은 노동자 자신들 간의 경쟁으로 인해 계속 저해당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럴수록 항상 다시 솟아오르며, 강해지며, 굳어지며, 거세지고 있다. 그 조직은 부르주아 자체의 분열을 이용하여 노동자의 특정한 이해에 대한 입법적 승인을 요구한다. 그리하여 영국에서는 10시간 노동 법안이 통과되었다. 기존 사회의 계급들 간에 일어나는 모든 충돌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프롤레타리아의 발전 과정을 촉진시킨다. 부르주아는 자신이 항상적인 싸움 속에 있음을 깨닫는다. 부르주아는 처음에는 귀족과, 이후에는 부르주아 가운데 산업의 진보에 대해 적대적인 이해 관계를 가지게 된 일부분과, 그리고 외국의 부르주아와는 항상, 싸움을 벌여왔다. 이 모든 싸움에서 부르주아는 프롤레타리아에게 호소하고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으며, 그리하여 그들을 정치 무대로 끌어낼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결국 부르주아는 스스로 프롤레타리아에게 자기 자신의 정치 교육과 일반 교육의 요소들을 공급하게 된다. 달리 말해 부르주아는 프롤레타리아에게 자신과 맞서 싸울 무기를 주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미 본 대로 지배계급의 모든 분파들은 산업의 진보에 따라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하거나, 적어도 자신의 존재 조건을 위협당하게 된다. 이들 역시 프롤레타리아에게 계몽과 진보의 새로운 요소를 공급한다. 마지막으로, 계급투쟁이 결정적인 순간에 다다르게 될 때 지배계급 내부에서, 아니 사실상 기존 사회 전체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붕괴 과정은 매우 격렬하고 강렬한 성격을 띠게 되므로 지배계급의 일부가 떨어져나와 미래를 자기 수중에 장악하고 있는 혁명적 계급의 편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므로 일찍이 귀족의 일부가 부르주아 편으로 넘어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 부르주아의 한 부분, 특히 역사적 운동 전반을 이론적으로 이해하는 수준으로 스스로를 끌어올린 부르주아 사상가들의 부분이 프롤레타리아의 편으로 넘어온다. 오늘날 부르주아와 대립하고 있는 모든 계급들 가운데 오직 프롤레타리아만이 진정으로 혁명적인 계급이다. 다른 계급들은 현대 산업이 전진함에 따라 몰락하며 결국 사라져가지만, 프롤레타리아는 현대 산업의 특수하고도 본질적인 산물이다. 중간계급 하층, 소규모 공장주, 상점주, 기능공, 농민 등 이들 모두는 중간계급의 각 부분이라는 자신의 존재를 소멸시키지 않기 위해서 부르주아에 맞서 싸운다. 그러므로 그들은 혁명적인 것이 아니라 보수적이다. 게다가 그들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후진시키려 하기 때문에 반동적이기도 하다. 간혹 그들이 혁명적인 경우가 있더라도 그것은 그들이 프롤레타리아로의 전락이 임박했음을 예감했을 경우에만 그러하다. 그때 그들은 자신의 현재 이익이 아닌 미래 이익을 수호하며, 자신의 입장을 버리고 프롤레타리아의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낡은 사회의 최하층에서도 내팽개쳐진, 수동적으로 썩어가는 대중인 "위험한 계급", 사회적 쓰레기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인해 곳곳에서 운동 속에 휩쓸릴 수도 있으나, 그 생활 조건 때문에 그들읜 거의가 반동적 음모에 의해 매수되는 도구의 일부가 된다. 프롤레타리아의 조건들 가운데 낡은 사회의 조건들은 대부분 이미 사실상 곤궁에 처해 있다. 프롤레타리아는 재산도 없고, 처자와의 관계도 이제 더 이상 부르주아적 가족 관계와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으며, 영국에서나 프랑스에서나 미국에서나 독일에서나 현대적 산업노동, 자본에 대한 현대적 종속으로 인해 그는 일체의 민족적 성격을 잃어버렸다. 그에게 법, 도덕, 종교 따위는 바로 그만큼의 부르주아적 편견과 똑같으며, 그 뒤에는 그만큼의 부르주아적 이익이 매복해 있을 뿐이다. 선행했던 모든 지배계급들은 사회의 대부분을 자신의 전유(專有)조건 하에 종속시킴으로써 기존의 지위를 강화하고자 했다. 프롤레타리아는 자기 자신의 이전의 전유 양식을 폐지하지 않고서는 사회적 생산력의 주인이 될 수 없다. 그들은 획득하고 강화시킬 그 무엇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의 사명은 지금까지 개인 재산을 보호하고 보장해온 모든 것들을 파괴하는 데 있는 것이다. 이전의 역사적 운동은 모두 소수의 운동이며 소수의 이익을 위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운동은 거대한 다수의 자의식적이고 자주적인 운동이며, 거대한 다수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우리의 현 사회의 최하층인 프롤레타리아는 공적 사회의 모든 상위층들이 사라지지 않고서는 움직일 수도 일어설 수도 없다.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의 투쟁은 처음에, 내용에서는 아니더라도 형식에서는 일국적인 투쟁이다. 따라서 각 나라의 프롤레타리아는 당연히 무엇보다 먼저 자국 부르주아와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의 가장 일반적인 발전 국면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기존 사회 내에서 벌어지는 어느 정도 은폐된 내전을 추적하여, 그 내전이 공개적인 혁명으로 터져나오고 부르주아를 폭력적으로 타도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의 지배를 위한 토대를 놓는 지점에까지 이르렀다. 이미 보았듯이 지금까지 모든 사회의 형태는 억압계급과 피억압계급 간의 적대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한 계급을 억압하려면 그 계급이 적어도 자신의 노예적 존재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일정한 조건이 보장되어야 한다. 농노제 시대의 농노가 코뮨의 구성원으로 발전해나갔듯이, 봉건적 절대주의의 멍에 속에 있던 프티-부르주아는 부르주아로 발전해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 노동자는 산업의 진보에 따라 떠오르기는커녕 자기 계급의 존재 조건 아래로 더욱 가라앉는다. 노동자는 빈민이 되며, 빈곤은 인구나 부의 증가보다 더 빨리 발전한다. 여기서, 부르주아가 사회의 지배계급이 되거나 자신의 존재 조건을 고압적인 법률로 사회에 강제하는 것 따위는 이제 더 이상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 명백해진다. 즉 부르주아는 자신의 노예제 내에서 노예의 생존을 보장해줄 능력이 없기 때문에, 즉 노예가 자기를 먹여살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노예를 먹여살려야 하는 상황으로 노예를 빠뜨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 이상 지배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사회는 이제 이 부르주아 아래에서 살 수 없다. 달리 말해 부르주아의 존재는 더 이상 사회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부르주아 계급의 존재와 지배를 위한 본질적 조건은 자본의 형성과 증대이며, 자본의 조건은 임금노동이다. 임금노동은 오직 노동자들 간의 경쟁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타의적이기는 하지만 부르주아가 촉진시키는 산업의 진보는 경쟁으로 인한 노동자들의 고립 대신 결사로 인한 혁명적 결합을 가져온다. 그러므로 현대 산업의 발전은 부르주아가 생산물을 생산하고 전유하는 바로 그 토대들 그 발 밑에서 무너뜨리는 셈이다. 결국 부르주아가 생산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무덤을 파는 자일 뿐이다. 부르주아의 몰락과 프롤레타리아의 승리는 양자 모두 불가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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