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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위왕(楚威王)의 시대에 이르러, 초위왕은 공이 많은 초나라의 재상인 소양(昭陽)에게 화씨벽을 상으로 내렸다. 전국(戰國)시대 중기, 월나라를 멸망시키고 그 영토를 병합한 초나라는 석두성(石頭城) 자리에 금릉읍(金陵邑)을 설치하였다. 월성이 왕기(王氣)를 품었다는 방사(方士)들의 조언에 따라, 초위왕(楚威王)은 황금을 매장하여 왕기를 제압하고자 했는데, 여기서 금릉(金陵)이란 명칭이 생겨났다. 또한, 육국(六國)을 평정하고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秦始皇)은 금릉의 지맥에 혈(穴)을 뚫고 구릉을 절단했으며, 명칭도 말릉(抹陵)이라 개명하였다. 오늘날 남경시내를 관통하는 진회하는 바로 그 때 형성되었다고 한다. 초위왕과 진시황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은 서기 3세기초, 삼국(三國)시대에 와서다. 서기 229년, 손권(孫權)은 동오(東吳)왕조를 창시하면서 그 도읍을 말릉에 두었고, '제왕의 대업을 건립한다(建立帝王大業)'는 취지하에 건업(建業)으로 개명했다. 진조(晋朝)가 영가난(永嘉亂)을 피해 강남(江南)으로 내려온 후, '강락평안(康樂平安)'을 추구한다는 심정으로 다시 건강(建康)이라 개명하기에 이르렀다. 분류:초나라의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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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위왕(楚威王)의 시대에 이르러, 초위왕은 공이 많은 초나라의 재상인 소양(昭陽)에게 화씨벽을 상으로 내렸다. 전국(戰國)시대 중기, 월나라를 멸망시키고 그 영토를 병합한 초나라는 석두성(石頭城) 자리에 금릉읍(金陵邑)을 설치하였다. 월성이 왕기(王氣)를 품었다는 방사(方士)들의 조언에 따라, 초위왕(楚威王)은 황금을 매장하여 왕기를 제압하고자 했는데, 여기서 금릉(金陵)이란 명칭이 생겨났다. 또한, 육국(六國)을 평정하고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秦始皇)은 금릉의 지맥에 혈(穴)을 뚫고 구릉을 절단했으며, 명칭도 말릉(抹陵)이라 개명하였다. 오늘날 남경시내를 관통하는 진회하는 바로 그 때 형성되었다고 한다. 초위왕과 진시황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은 서기 3세기초, 삼국(三國)시대에 와서다. 서기 229년, 손권(孫權)은 동오(東吳)왕조를 창시하면서 그 도읍을 말릉에 두었고, '제왕의 대업을 건립한다(建立帝王大業)'는 취지하에 건업(建業)으로 개명했다. 진조(晋朝)가 영가난(永嘉亂)을 피해 강남(江南)으로 내려온 후, '강락평안(康樂平安)'을 추구한다는 심정으로 다시 건강(建康)이라 개명하기에 이르렀다. 분류:초나라의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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