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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양 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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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양 산성은 안성시 양성면 방신리 백운산에 자리잡은 산성이다. 무양산성[舞陽山城] 또는 무한성(無限城)은 경기 안성시 양성면 신방리 고령산의 둘레 850m의 산성이다. 고령산(해발 208.8m)을 둘러싼 테뫼식과 포곡식이 결합한 복합식 산성이다. 《문화유적총람》에는“안성군 양성면 방신리 산 42소재의 운수암(雲水庵)을 보호하기 위하여 쌓은 성이라 하며 무양이라는 사람이 쌓았다 하여 무양성이라 전해지고 있는데, 연대는 미상이고 토성의 길이는 약 460m로 추정되나 현재 길이 120m, 높이 2m, 너비 1m가 잔존한다”고 하였다. 유적의 동쪽으로는 대이산(해발 232m)·고성산(해발 298.1m) 등의 산지가 이어지며 남쪽으로는 안성천과 안성평야가 펼쳐져 있다. 서쪽과 북쪽으로는 평택평야와 구릉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내성은 테뫼식으로 석축하였으며 평면은 타원형을 하고 있다. 시설물은 남문지·북문지와 북장대지, 북치성, 건물지 5개소, 우물지 등이 있다. 성벽은 북문지 동측 외벽과 서망대지 부근의 성벽 잔존 구간에서 면석(面石)의 축조수법을 확인할 수 있다. 외성은 동쪽 계곡부를 포함하는 포곡식의 형태를 하고 있다. 성벽은 능선부를 이용하여 협축하였으며 안쪽으로는 평탄대지를 조성하여 회곽도로 이용하였다. 성안에는 운수암이라는 사찰이 있는데 조선 영조 26년(1750) 선약명(船若明)이라는 사람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이 절은 흥선대원군이 중건하고 ‘운수암’이라는 친필 현판을 하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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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양 산성은 안성시 양성면 방신리 백운산에 자리잡은 산성이다. 무양산성[舞陽山城] 또는 무한성(無限城)은 경기 안성시 양성면 신방리 고령산의 둘레 850m의 산성이다. 고령산(해발 208.8m)을 둘러싼 테뫼식과 포곡식이 결합한 복합식 산성이다. 《문화유적총람》에는“안성군 양성면 방신리 산 42소재의 운수암(雲水庵)을 보호하기 위하여 쌓은 성이라 하며 무양이라는 사람이 쌓았다 하여 무양성이라 전해지고 있는데, 연대는 미상이고 토성의 길이는 약 460m로 추정되나 현재 길이 120m, 높이 2m, 너비 1m가 잔존한다”고 하였다. 유적의 동쪽으로는 대이산(해발 232m)·고성산(해발 298.1m) 등의 산지가 이어지며 남쪽으로는 안성천과 안성평야가 펼쳐져 있다. 서쪽과 북쪽으로는 평택평야와 구릉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내성은 테뫼식으로 석축하였으며 평면은 타원형을 하고 있다. 시설물은 남문지·북문지와 북장대지, 북치성, 건물지 5개소, 우물지 등이 있다. 성벽은 북문지 동측 외벽과 서망대지 부근의 성벽 잔존 구간에서 면석(面石)의 축조수법을 확인할 수 있다. 외성은 동쪽 계곡부를 포함하는 포곡식의 형태를 하고 있다. 성벽은 능선부를 이용하여 협축하였으며 안쪽으로는 평탄대지를 조성하여 회곽도로 이용하였다. 성안에는 운수암이라는 사찰이 있는데 조선 영조 26년(1750) 선약명(船若明)이라는 사람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이 절은 흥선대원군이 중건하고 ‘운수암’이라는 친필 현판을 하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존 산성중에 무양산성처럼 명칭이 다양한 곳도 없다. 조선전기 때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무한성으로 처음 등장한다. 대동지지에는 백운산고성, 1872년 지방지도에 무한성, 1899년 양성군 읍지는 고적성, 1925년의 안성기략에는 무란성, 1990년 안성군지에는 무양산성 등으로 표기돼 있다. 산성이름은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우리에게 잊혀 졌지만, 고서에 등장할 만큼 산성의 역사이야기는 가득하다. 삼국시대 산성에서 흔히 전해지는 남매축성설화 이야기가 이곳에도 등장한다. 무양이라는 여자와 남동생이 목숨 걸고 성 쌓기 내기(누나는 성을 쌓고, 그사이 남동생은 나막신을 신고 수도에 갔다 오기)를 했는데, 성은 완성돼 가는데도 아들이 나타나지 않자 속이 타들어가는 어머니는 꾀를 부렸다. 팥죽을 삶아서 딸에게 먹도록 했다. 마침내 수도에 간 아들이 돌아왔다. 어머니 계략(計略)으로 남동생이 이기고 내기에서 진 누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다. 쟁탈전이 연속이었던 우리의 고대역사에 ‘남존여비‘의 관념이 뿌리 깊게 남아있던 당시 시대상이 전설로 이어진 것이다. 무양 산성도 삼국시대 산성들처럼 초기축성 기록이 없다. 성벽은 운수암 앞에서 양쪽 계곡을 감싸며 정상으로 이어졌다. 내성은 산 정상부에 돌로 쌓았는데 흙더미 속에 묻혀 훼손된 상태다. 내성 둘레는 440m로, 남쪽문지에 석축이 남아있으며, 남문지 안쪽으로 건물터로 보이는 평탄지가 있다. 북문지에도 석축이 잘 남아 있으며, 북치성과 북장대지도 또렷하다. 서쪽망대지에도 성벽이 흙더미 속에 묻혀 있다. 외성은 동쪽 계곡에서 포곡식 형태로 이어졌다. 둘레는 내성보다 큰 850m 정도로 흙으로 쌓았다. 산성 내에서 삼국시대 기와 편과 토기편이 출토돼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시대에 보강 된 것으로 추정된다. 성안에는 많은 시설물이 있을 것으로 보이며, 현재까지 정밀조사 없이 방치돼 있다. 성안에는 못 하나가 있었지만 절이 세우면서 멸실됐다. 산성서쪽 아래로 고속도로가 나 있으며 동쪽으로는 고성 산성과 비봉 산성 , 남쪽에는 태비 산성과 사산성이, 서쪽은 지제동 산성과 평택의 드넓은 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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