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무소(楊茂搜) 는 양비룡의 양자로 저족의 보국장군 우현왕(재위:296년 - 317년)이였다. 서진 사마소의 시대가 되면서 저족의 양비룡은 서진에의해 정서장국으로 봉하여지고 부족을 인솔하여 고지 회복운동을 개시하였다. 양비룡의 양자가 된 양무수는 296년 스스로 보국장군 우현왕을 자칭하고 저족 부족에의해 옹립되어 왕위에 취임하였다. 지방정권으로 구지의 건국이였다. 건국 후 구지공을 칭하고 무도(武都)、陰平의 2군을 통치하였다. 317년 구지는 계승을 둘러싸고 내분이 발생하고 양무수의 장자 양난적은 좌현왕으로 하변(下辨), 동생 양견두는 우현왕으로 하지(河池 현재의 徽県)를 통치하였으나 이 형제의 대립에의해 일시 롱난 지구의 대부분을 통치하였던 구지였으나 국세가 쇠퇴하여 317년에는 전진의 부견이 파견한 양안에의해 격파되어 멸망하였다.
양무소(楊茂搜) 는 양비룡의 양자로 저족의 보국장군 우현왕(재위:296년 - 317년)이였다. 서진 사마소의 시대가 되면서 저족의 양비룡은 서진에의해 정서장국으로 봉하여지고 부족을 인솔하여 고지 회복운동을 개시하였다. 양비룡의 양자가 된 양무수는 296년 스스로 보국장군 우현왕을 자칭하고 저족 부족에의해 옹립되어 왕위에 취임하였다. 지방정권으로 구지의 건국이였다. 건국 후 구지공을 칭하고 무도(武都)、陰平의 2군을 통치하였다. 317년 구지는 계승을 둘러싸고 내분이 발생하고 양무수의 장자 양난적은 좌현왕으로 하변(下辨), 동생 양견두는 우현왕으로 하지(河池 현재의 徽県)를 통치하였으나 이 형제의 대립에의해 일시 롱난 지구의 대부분을 통치하였던 구지였으나 국세가 쇠퇴하여 317년에는 전진의 부견이 파견한 양안에의해 격파되어 멸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