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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경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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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백년전인지, 수천년전인지는 모르지만, 당시 북경지방은 매우 어려웠고, 북경지방은 전부 바다였다. 사람들은 그래서 이 지역을 "고해유주(苦海幽州)"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할 수없이 서쪽과 북쪽의 산 위에서 생활하였고, 이 고해는 용왕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용왕은 용모(龍母)와 함게 아들(龍子), 며느리와 함께 이 지역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짧은 바지를 입은 어린 아이가 나타났는데, 이름을 나타(哪吒)라고 했다. 나타는 오자마자 용왕 일가와 싸움을 시작했고, 81일간을 싸워서 결국 용왕과 용모를 생포하고, 용자와 며느리는 풀어주었다. 그러자, 북경일대의 바닷물을 전부 빠져서 육지가 나타났다. 나타는 몇군데 해안을 막아버리고, 용왕과 용모를 그 중의 하나의 큰 해안에 가두었다. 여기가 바로 북해의 해안이며, 그 위에는 큰 백탑을 세워서 용왕과 용모가 영원히 백탑을 지키고 빠져나올 수 없게 하였다. 이후로 이 지역은 더 이상 고해로 불리지 않았으며, 유주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다. 용파는 상처입은 용녀를 데리고 흑룡담에 숨었다. 거기서 살았는데, 지금도 흑룡담에는 돌맹이에 머리를 부딪치는 작은 물고기가 있는데 바로 그 용파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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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백년전인지, 수천년전인지는 모르지만, 당시 북경지방은 매우 어려웠고, 북경지방은 전부 바다였다. 사람들은 그래서 이 지역을 "고해유주(苦海幽州)"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할 수없이 서쪽과 북쪽의 산 위에서 생활하였고, 이 고해는 용왕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용왕은 용모(龍母)와 함게 아들(龍子), 며느리와 함께 이 지역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짧은 바지를 입은 어린 아이가 나타났는데, 이름을 나타(哪吒)라고 했다. 나타는 오자마자 용왕 일가와 싸움을 시작했고, 81일간을 싸워서 결국 용왕과 용모를 생포하고, 용자와 며느리는 풀어주었다. 그러자, 북경일대의 바닷물을 전부 빠져서 육지가 나타났다. 나타는 몇군데 해안을 막아버리고, 용왕과 용모를 그 중의 하나의 큰 해안에 가두었다. 여기가 바로 북해의 해안이며, 그 위에는 큰 백탑을 세워서 용왕과 용모가 영원히 백탑을 지키고 빠져나올 수 없게 하였다. 이후로 이 지역은 더 이상 고해로 불리지 않았으며, 유주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다. 나중에 북경지방에 점점 사람들이 늘어나고, 집을 짓고, 마을이 생기고, 도시가 생겼다. 도망갔던 용의 아들은 이 때 이미 커서 어른 용공(龍公)이 되었고, 부인 용파(龍婆)와 아들, 딸을 데리고, 서산 옥천산 아래의 한 해안 속에서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지내고 있었다. 그들은 유주에 사람들이 하루하루 더 많아지는 것을 보고는 매우 화가났고, 물난리를 일으켜 사람들을 쫓아내고자 하였다. 하루는 용공이 소식을 들었는데, 사람들이 유주에 '북경성'을 짓는다는 것이었다. 용공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우리 용궁을 없애버리더니 그것도 모자라 여기에 성을 짓겠다니, 너무 못살게 구는 것 아닌가..." 이어서 들리는 소식은 유백온과 요광효(두 사람은 모두 명나라 주원장의 군사들임)가 팔비나타를 본 뜬 성의 도면을 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용공은 용파에게 말했다. "유주에 만일 그들이 팔비나타성을 짓는다면, 우리는 다시는 어깨를 펴고 살 수 없을 것이다" 용파는 말했다. "됐다. 성을 지으려면 지으라고 해라. 우리는 해안 속에 있는 용궁에 살면 될 것아니냐. 괜히 그들과 사단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 그러자 용공은 더욱 화를 냈다. "이게 사는 거냐? 저 넘들이 잘 사는 꼴은 못보겠다. 성을 지으려고 하면 성안의 모든 물을 빨아들여 목말라 죽도록 만들겠다" 용파는 말리고 싶어도 말릴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남편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용공은 다음 말, 농민으로 분장하고 용파, 용아, 용녀를 데리고 북경성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용아에게는 북경성내의 단물(甘水)을 모두 마시도록 하고, 용녀에게는 북경성내의 쓴물(苦水)을 다 마시도록 했다. 그 후에 용아와 용녀는 두 개의 물고기 담는 바구니로 변신했다. 용공과 용녀는 용아와 용녀를 차에 싣고는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서직문을 통하여 옥천산으로 갔다. 유백온은 부하들로부터 북경성의 물이 다 말랐다는 말을 듣고는 분명히 용왕일가가 복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유백온은 부하들에게 북경성을 드나든 사람중이 행색이 수상한 자들이 있었는지 알아보도록 지시했고, 곧 서직문으로 부부가 차를 밀고 끌며 나갔는데 차에 물고기담는 바구니에 물이 흘러넘쳤다는 말을 듣게 된다. 바구니가 크지는 않았는데, 부부가 매우 힘들게 밀고 끌고 갔다는 것이다. 유백온은 부하를 보내서 쫓게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쫓아가더라도 절대 용공에게 눈치채어서는 안된다. 바로 물을 쏟아 익사시킬 것이다. 창으로 두 물바구니를 찔러서 부수어야 한다. 만일 그들이 물바구니를 해안에 쏟는다면 북경은 다시는 물을 찾아올 수 없을 것이다." 부하들에게 누가 가겠느냐고 물었는데, 서로 눈치만 보고 아무도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그 때 고량(高亮)이라는 젊은이가 나서서 스스로 자원했다. 고량은 힘들게 쫓아가서 옥천산 자락에서 용공과 용파를 만났다. 고량은 창을 들어 두개의 바구니중에 하나를 찔렀다. 그리고는 다시 창을 들어 두번째 바구니를 찌르려고 하는데, 바구니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배가 불룩하게 나온 아이가 보일 뿐이었다. 그 아이는 옥천산의 해안 속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용파는 찢어진 바구니를 들고 북쪽으로 날듯이 도망쳤고, 흑룡담(黑龍潭)에 숨었다. 용공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물을 일으켜 고량을 쫓았다. 고량이 빨리 도망치면 물도 빨리 쫓아오고, 천천히 도망치면 천천히 따라왔다. 북경성의 서직문에 다다랐을 때, 고량은 성위에 있는 유백온을 보고 반가워서 무심코 뒤를 돌아보다가 뒤따라오던 물에 익사해버렸다. 이후에 북경성에는 물이 있기는 하나 대부분 쓴물이었다. 단물은 어디로 갔는가? 옥천산의 해안속으로 갔다. 그래서 지금도 옥천산에서는 중국에서 가장 좋다는 광천수가 난다. 고량이 죽은 장소에 사람들이 다리를 하나 만들어서 고량교(高亮橋)라고 하였다. 나중에는 이름이 바뀌어서 현재는 고량교(高梁橋)라 불리운다. 용파는 상처입은 용녀를 데리고 흑룡담에 숨었다. 거기서 살았는데, 지금도 흑룡담에는 돌맹이에 머리를 부딪치는 작은 물고기가 있는데 바로 그 용파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용공은 비록 고량은 죽였지만 화가 풀리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유백온과 싸울 수는 없었다. 용자를 따라 옥천산의 해안속으로 들어갔으며, 그래서 옥천산의 물은 지금도 그렇게 단 것이다. 용공은 북경성을 다 짓고 유백온이 북경을 떠나면 다시 북경성을 물에 잠기겠다고 생각하고 기다린다. 결국 북경의 팔비나타성은 완성되었다. 유백온이 북경을 떠타 남경의 주원장에게 보고하러 가려고 할 때, 홀연히 생각하니 용왕이 떠올랐다. 그래서, 요광효를 불러서 용왕이 나타나면 처리해달라고 부탁을 하게 된다. 용공은 유백온이 떠난 것을 알고는 용아를 데리고 지하의 수도를 따라 북경으로 왔다. 해안이 있는 곳으로 머리를 부딪쳐갔지만 이미 위에 절을 지어서 누르고 있어서 머리만 아프고 위로 나갈 수가 없었다. 융공 부자는 여러 해안에서 시도했지만 마찬가지였고 머리만 부풀어 올랐다. 그러다가 또 한 곳의 해안을 발견하고 머리를 부딪쳐갔는데, 그 곳은 막혀 있지 않았다. 이 곳이 바로 북신교(北新橋)였다. 용공과 용아가 해안을 뚫고 나온 후 용공은 노인으로 용자는 젊은이로 변신했다. 용공부자는 물을 데리고 와서 북신교의 동서남북일대는 모두 물바다가 되었다. 북경성의 주민들은 모두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몰랐고, 단지 용공 부자만 득의양양하게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듣고 요광효가 달려왔다. 그는 검을 꺼내들고 몇번 휘둘러서 물난리를 그치게 만들었다. 용공은 이 광경을 보고 깜짝 놀랐다. 유백온이 북경을 떠나서 자신들을 막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였는데, 요광효가 다시 나타난 것이었다. 그들 부자는 요광효와 검을 들고 싸우기 시작했다. 원래 요광효는 용공 한명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고, 용아 혼자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지만, 둘의 합공에는 견뎌내지 못했다. 요광효가 싸움에서 밀려 힘겨운 상황이 되었을 때, 갑자기 빛이 번쩍하더니 용공이 다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요군사 빨리 작은 용을 제압하시오. 나는 대송의 악비외다" 요광효는 얼른 용아를 제압했다. 용공을 제압한 악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요광효는 용공과 용아 부자를 어떡할지 고민하다가, 북신교의 해안에 길다란 쇠밧줄을 만들어서 용공과 용아를 묶고, 우물 깊이 늘어뜨렸다. 그리고, 위에는 사당을 세워서, 용공을 잡는데 도와준 악비를 모셨다. 용공이 "요군사. 설마 나를 천년 만년 묶어두지는 않겠지? 언제쯤 풀어줄 거요"라고 하자, 요광효는 "이 다리가 옛다리(古橋)가 되면 풀려날 거요"라고 하였다. 이후 요광효는 사람들에게 이 지역을 북신교라고 부르도록 하였다. 이 때 용아도 다시 물었다. "요군사. 나는 언제 풀어줄 거요" 요광효는 "네가 성문을 열 때 돌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면 풀려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북신교옆의 숭문문은 성문을 열고 닫을 때 돌판을 두드리지 않고 쇠종을 친다. 나이든 사람들에 의하면 북경성의 9개 문중에 8개문은 돌판을 쓰고, 1개문만 쇠종을 쓴다는 것이다. 분류:중국의 전설 분류:북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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