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연은 조선초에 설치된 사군중의 하나다. 1403년(태종 3)에는 강계부(江界府), 1414년에는 여연군(閭延郡)을 두어 여진의 준동에 대처하였다. 세종 14년 겨울 파저강의 여진족이 침공한 사실을 보고하지 않은 여연군의 군수 김윤수가 탄핵되었을 때 세종은 그를 보호해 주었다. 최윤덕은 태종 때 설치되었던 여연군(閭延郡)을 되찾고 새로이 자성군(慈城郡)을 설치했다. 졸본은 지금의 폐여연군(廢閭延郡)에서 강 건너편쪽 지역이다. 함길도(咸吉道) 갑산부(甲山府)의 여연촌에 소훈두(小薰豆) 이서(以西)의 땅을 떼어 지금의 중강진(中江鎭) 부근에 여연군을 설치하고 평안도로 이관함으로써, 갑산 이서의 압록강 남안(南岸)이 모두 우리의 영역이 되었다. 분류:조선 분류:사군
여연은 조선초에 설치된 사군중의 하나다. 1403년(태종 3)에는 강계부(江界府), 1414년에는 여연군(閭延郡)을 두어 여진의 준동에 대처하였다. 세종 14년 겨울 파저강의 여진족이 침공한 사실을 보고하지 않은 여연군의 군수 김윤수가 탄핵되었을 때 세종은 그를 보호해 주었다. 최윤덕은 태종 때 설치되었던 여연군(閭延郡)을 되찾고 새로이 자성군(慈城郡)을 설치했다. 졸본은 지금의 폐여연군(廢閭延郡)에서 강 건너편쪽 지역이다. 함길도(咸吉道) 갑산부(甲山府)의 여연촌에 소훈두(小薰豆) 이서(以西)의 땅을 떼어 지금의 중강진(中江鎭) 부근에 여연군을 설치하고 평안도로 이관함으로써, 갑산 이서의 압록강 남안(南岸)이 모두 우리의 영역이 되었다. 분류:조선 분류:사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