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막루(豆莫婁), 혹은 달말루(達末婁),대막려, 대막루라고 한다. 5세기 중엽부터 8세기 무렵까지 존속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부여계 유민들이 세운 국가이다.북부여가 완전히 멸망한 뒤, 그 유민들의 일부는 나하를 건너 두막루를 세운다. 중국의 위서 두막루조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나온다. 두막루국은 물길 북쪽 천여리에 있다. 옛날의 북부여이다. 실위 의 동쪽에 있다. 부여국의 경계였던 약수(弱水: 제1 송화강) 유역에까지 세력을 뻗침에 따라 두막루인은 어떤 과정으로든 고구려의 존재를 인식했을 것이다. 위서(魏書)와 북사(北史)에 실려있는 두막루의 이야기는 삼국지와 당서 의 달말루(達末婁)등과 이어지고 있다. 당서 열전(列傳)에 따르면 개원(開元) 11년(723)에 달말루(達末婁) 수령(首領)이라는 자가 와서 조공하였다. 분류:부여
두막루(豆莫婁), 혹은 달말루(達末婁),대막려, 대막루라고 한다. 5세기 중엽부터 8세기 무렵까지 존속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부여계 유민들이 세운 국가이다.북부여가 완전히 멸망한 뒤, 그 유민들의 일부는 나하를 건너 두막루를 세운다. 중국의 위서 두막루조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나온다. 두막루국은 물길 북쪽 천여리에 있다. 옛날의 북부여이다. 실위 의 동쪽에 있다. 부여국의 경계였던 약수(弱水: 제1 송화강) 유역에까지 세력을 뻗침에 따라 두막루인은 어떤 과정으로든 고구려의 존재를 인식했을 것이다. 위서(魏書)와 북사(北史)에 실려있는 두막루의 이야기는 삼국지와 당서 의 달말루(達末婁)등과 이어지고 있다. 당서 열전(列傳)에 따르면 개원(開元) 11년(723)에 달말루(達末婁) 수령(首領)이라는 자가 와서 조공하였다. 분류: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