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훈제([[|]]: 桂薰梯, 1921년 12월 23일 ~ 1999년 3월 14일)은, 대한민국의 재야운동가으로, 평안북도 선천군에서 태어났다. 1943년 경성제국대학 재학도중 학병을 거부하였다. 815 광복후 경성제대가 이름을 바꾼 서울대학교에 복학하여 문리대학생회장을 지내면서 반탁운동에 앞장섰고, 미군정에 의한 서울대의 국립화에 반대하기도 하였다. 이후, 교육자로 일하기도 하고 언론인으로서 사상계 편집장과 씨알의소리 편집위원을 맡으면서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민주화 운동과 통일운동에 앞장섰다. 그리고 이로인해 1970년대와 80년대 수차례 투옥당했다. 1999년 고문후유증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계훈제([[|]]: 桂薰梯, 1921년 12월 23일 ~ 1999년 3월 14일)은, 대한민국의 재야운동가으로, 평안북도 선천군에서 태어났다. 1943년 경성제국대학 재학도중 학병을 거부하였다. 815 광복후 경성제대가 이름을 바꾼 서울대학교에 복학하여 문리대학생회장을 지내면서 반탁운동에 앞장섰고, 미군정에 의한 서울대의 국립화에 반대하기도 하였다. 이후, 교육자로 일하기도 하고 언론인으로서 사상계 편집장과 씨알의소리 편집위원을 맡으면서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민주화 운동과 통일운동에 앞장섰다. 그리고 이로인해 1970년대와 80년대 수차례 투옥당했다. 1999년 고문후유증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