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리케리우스 [Glycerius]는 5세기 후반의 서로마 황제(473~474 재위)이다. 동로마 황제 레오 1세는 글리케리우스를 합법적인 서로마 황제로 인정하지 않고 율리우스 네포스를 사령관으로 삼아 함대를 파견했다. 전(前) 황제 올리브리우스(472. 4~11 재위)가 죽은 지 4개월 뒤인 473년 3월 5일에 황제로 선포되었는데, 그를 제위에 올린 군도바트는 서로마의 유력한 장군인 황제 옹립자 리키메르(472 죽음)의 조카이자 후계자였다. 그러나 동로마 황제 레오 1세는 글리케리우스를 합법적인 서로마 황제로 인정하지 않고 율리우스 네포스를 사령관으로 삼아 함대를 파견했다. 네포스는 로마 근처에 상륙해 스스로를 황제로 선포했다. 글리케리우스는 맞서 싸워보지도 않은 채 항복했고 살로나이(지금의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근처)의 주교가 되었다. 그러나 그뒤 480년에 네포스 암살에 관여했다. 글리케리우스가 이룬 가장 중요한 업적은 이탈리아 반도를 침입하던 동고트족의 진로를 갈리아 지방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율리우스 네포스는 글리케리우스 황제가 사망하자 당시 라벤나 에 있던 서로마 궁정의 요청으로 동로마 제국 에 의해 서로마 황제에 임명되었다. 1.
* 넘겨주기
글리케리우스 [Glycerius]는 5세기 후반의 서로마 황제(473~474 재위)이다. 동로마 황제 레오 1세는 글리케리우스를 합법적인 서로마 황제로 인정하지 않고 율리우스 네포스를 사령관으로 삼아 함대를 파견했다. 전(前) 황제 올리브리우스(472. 4~11 재위)가 죽은 지 4개월 뒤인 473년 3월 5일에 황제로 선포되었는데, 그를 제위에 올린 군도바트는 서로마의 유력한 장군인 황제 옹립자 리키메르(472 죽음)의 조카이자 후계자였다. 그러나 동로마 황제 레오 1세는 글리케리우스를 합법적인 서로마 황제로 인정하지 않고 율리우스 네포스를 사령관으로 삼아 함대를 파견했다. 네포스는 로마 근처에 상륙해 스스로를 황제로 선포했다. 글리케리우스는 맞서 싸워보지도 않은 채 항복했고 살로나이(지금의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근처)의 주교가 되었다. 그러나 그뒤 480년에 네포스 암살에 관여했다. 글리케리우스가 이룬 가장 중요한 업적은 이탈리아 반도를 침입하던 동고트족의 진로를 갈리아 지방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율리우스 네포스는 글리케리우스 황제가 사망하자 당시 라벤나 에 있던 서로마 궁정의 요청으로 동로마 제국 에 의해 서로마 황제에 임명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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