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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니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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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umb|230px|한니발 한니발 (Hannibal, 기원전 247년~기원전 183년)은 카르타고의 장군이다. 제1차 포에니 전쟁 당시 활약했던 장군 하밀카르 바르카의 아들로 9살에 로마를 쳐부술 것을 카르타고의 신 타니트에게 맹세했다고 한다. 청년 시절에는 아버지와 매형의 뒤를 이어, 식민지였던 에스파냐에서 총독으로 근무했다. 제2차 포에니 전쟁이 일어난 기원전 218년 여름 한니발은 10만여 명의 군대를 이끌고 에스파냐를 출발, 피레네와 알프스 산맥을 넘었다. 그러나 그때 한니발의 군사는 보병2만 기병 6천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당시 로마 공화정에서는 한니발의 군대가 바닷길을 통해 올 것으로 짐작했기 때문에, 한니발의 기발한 작전은 상당히 훌륭한 전략이었다. 한니발의 군대가 피레네 산맥과 알프스 산맥을 넘은 사건에 대해 역사저술가 플루타르코스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서 눈병을 치료하지 못해 한쪽 눈을 잃었음에도 낙심하지 않고, 작전에 몰두한 한니발의 열정과 자신들을 방해하는 원주민 포로들을 용맹한 전사는 고향에 돌려보내는 관용으로 복종시킨 지도력이 기적을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그후 한니발은 타치노 전투에서 스키피오에게 이기고 기원전 217년에 트라시메노 호숫가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어서 2만7명의 로마 군인과 집정관 플라미니우스를 학살했다. 그후 한니발은 계속 이탈리아로 남진을 거듭한 끝에 칸나에에서 바로와 아이밀리아누스가 지휘하는 8만 7천명의 대군과 겨우 5만명으로 맡붙게 돼었는데, 이 칸나에 전투에서 로마군인들을 중앙에 약한군을 배치하고 나머지 왼측과 오른쪽에 강한 군대를 배치하는 초승달 전법 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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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umb|230px|한니발 한니발 (Hannibal, 기원전 247년~기원전 183년)은 카르타고의 장군이다. 제1차 포에니 전쟁 당시 활약했던 장군 하밀카르 바르카의 아들로 9살에 로마를 쳐부술 것을 카르타고의 신 타니트에게 맹세했다고 한다. 청년 시절에는 아버지와 매형의 뒤를 이어, 식민지였던 에스파냐에서 총독으로 근무했다. 제2차 포에니 전쟁이 일어난 기원전 218년 여름 한니발은 10만여 명의 군대를 이끌고 에스파냐를 출발, 피레네와 알프스 산맥을 넘었다. 그러나 그때 한니발의 군사는 보병2만 기병 6천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당시 로마 공화정에서는 한니발의 군대가 바닷길을 통해 올 것으로 짐작했기 때문에, 한니발의 기발한 작전은 상당히 훌륭한 전략이었다. 한니발의 군대가 피레네 산맥과 알프스 산맥을 넘은 사건에 대해 역사저술가 플루타르코스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서 눈병을 치료하지 못해 한쪽 눈을 잃었음에도 낙심하지 않고, 작전에 몰두한 한니발의 열정과 자신들을 방해하는 원주민 포로들을 용맹한 전사는 고향에 돌려보내는 관용으로 복종시킨 지도력이 기적을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그후 한니발은 타치노 전투에서 스키피오에게 이기고 기원전 217년에 트라시메노 호숫가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어서 2만7명의 로마 군인과 집정관 플라미니우스를 학살했다. 그후 한니발은 계속 이탈리아로 남진을 거듭한 끝에 칸나에에서 바로와 아이밀리아누스가 지휘하는 8만 7천명의 대군과 겨우 5만명으로 맡붙게 돼었는데, 이 칸나에 전투에서 로마군인들을 중앙에 약한군을 배치하고 나머지 왼측과 오른쪽에 강한 군대를 배치하는 초승달 전법 으로 카르타고 군을 겨우 6,000명을 잃으면서 로마군을 7만이나 죽이고 1만을 포로로 잡는 대승을 거두어로마를 궁지로 몰아 넣었으나, 로마의 파비우스 막시무스 집정관의 지구전에 걸려서 남부 이탈리아의 주요 도시인 카푸아와 시라쿠사를 잃었다. "승리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역사의 예이다. " 이 두도시를 잃은 그는, 그후 이탈리아 외각인 칼라브리아로 쫓겨갔다. 결국 기원전 204년 겨우 31세에 불과한 젊은 총사령관 스키피오가 아프리카를 침략하자 결국 한니발은 기원전 203년 아프리카의 본국으로 돌아왔다. 본국에 돌아온 그는 로마의 젊은 장군 스키피오와 자마에서 싸워 패했다. 이미 스키피오는 한니발이 칸나에 전투에서 사용한 작전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쟁은 패할 수밖에 없었다. 한니발의 아내 시밀케와 그의 아들 그리고 에스파냐에서 총독으로 근무하던 동생 하스두르발은 로마와의 전쟁 중에 죽었으며, 그 자신도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서 도망쳤다가 수년 후 음독자살을 하였다. (기원전 18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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