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 - 기원전 260년 진나라는 한나라를 공격한다. 이때 한나라는 그당시 진과 맞설 강대국인 조에 땅을 바치고 싸우게 만들고, 조나라는 명장 염파를 장평관에 파견하고 진나라역시 백기를 파견한다. 염파는 장평관에서 지구전으로 진군을 소모시키려고 하였다. 이를 안 백기는 조나라 내부에 염파대신 조괄을 장평에 파견하면 조나라가 이긴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린다. 그말을 믿고 조나라 효성왕은 명신 인상여가 반대를 했건만 염파를 파면하고 조괄을 대신 파견한다. 조괄은 염파와 달리 직접전으로 나가지만 오히려 백기에게 당하고 전사한다. 지휘관이 죽은 이상 조나라군은 싸울 의욕이 없어 항복하고 만다. 그러나 진군에게 있어 조나라 40만 대군은 엄청난 위협을 주었다. 그래서 그날 밤 진군은 조나라 포로들을 살육하고 그 두개골로 탑을 쌓는다. 이것이 바로 장평관 전투라고 알려진다. 조나라 효성왕(孝成王) 9년, 기원전 257년, 진(秦)나라의 공격을 받아 수도 한단(邯鄲)이 포위되었다. 이에 평원군은 초(楚)나라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한 사신으로 가게 되자, 식객 중에서 자신을 수행할 사람 20명을 뽑고자 했다. 몇 번이고 고르고 골랐지만 끝내 한 사람을 채우지 못했다. 이때 모수(毛遂)라는 사람이 앞으로 나와 자신을 칭찬하며 말하자(門下有毛遂者, 前, 自贊于平原君, 曰), 평원군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유능한 사람이란, 마치 송곳이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것과 같아서, 당장 그 끝이 주머니를 뚫고 드러나게 되는 법인데, 당신은 삼 년 동안이나 내 집에 있으면서도 사람들로부터 무슨 재주가 있다는 말을 들어 보지 못했소. 이것은 당신에게 특별한 재주가 없는 뜻이오. 따라서 당신은 이번 임무를 해낼 수 없으니, 이곳에 머물러 있도록 하시오." "저는 오늘 비로소 자루 안에 넣어 주기를 청할 뿐입니다. 만약 군께서 저를 좀더 일찍이 자루에 넣어주셨더라면 자루 밖에까지 나왔을 것이며(臣乃今日請處囊中耳. 使遂早得處囊中, 乃脫穎而出), 그 끝이 드러나 보이는데 그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평원군은 마침내 모수를 일행에 포함시키기로 하였다. 먼저 선발된 19명은 모수를 경멸하며, 서로 마주보며 모수를 비웃었으나,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평원군은 조나라 효성왕 15년에 죽었다. 자손이 대를 이어갔으나 뒤에 결국 조나라와 함께 망했다. 분류:조나라의 군주 분류:조혜문왕 분류:성왕 분류:효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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