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티니아누스 3세[Valentinianus III,(영) Valentinian Ⅲ. 정식 이름은 Flavius Placidius Valentinianus. 419. 7. 2 라벤나~ 455. 3. 16 로마]는 로마의 황제(425~455 재위)이다. 오랜 세월 통치했지만 그 자신의 뜻대로 국사(國事)가 이루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는 귀족인 플라비우스 콘스탄티우스(421년에 로마를 통치한 콘스탄티우스 3세)와 갈라 플라키디아의 아들이었다. 삼촌인 황제 요한네스가 423년 죽은 뒤 2년 동안 제위 찬탈자인 호노리우스가 나라를 다스렸으나 폐위당했다. 그뒤 437년까지 플라키디아가 어린 아들 발렌티니아누스의 이름으로 서로마 제국을 다스렸으나 그동안 내내 실권을 쥔 사람은 유력한 귀족인 아이티우스였다. 이 시기에 일어난 중요한 사건으로는 반달족의 아프리카 상륙(429)을 들 수 있다. 10년 뒤 이들은 발렌티니아누스 정부의 종주권을 뒤엎었다. 이듬해 아이티우스의 밑에서 일하던 2명의 이방인 옵틸라와 트라우스틸라가 그들의 주인을 죽인 데 대한 보복으로 캄푸스마르티우스에서 그를 살해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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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티니아누스 3세[Valentinianus III,(영) Valentinian Ⅲ. 정식 이름은 Flavius Placidius Valentinianus. 419. 7. 2 라벤나~ 455. 3. 16 로마]는 로마의 황제(425~455 재위)이다. 오랜 세월 통치했지만 그 자신의 뜻대로 국사(國事)가 이루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는 귀족인 플라비우스 콘스탄티우스(421년에 로마를 통치한 콘스탄티우스 3세)와 갈라 플라키디아의 아들이었다. 삼촌인 황제 요한네스가 423년 죽은 뒤 2년 동안 제위 찬탈자인 호노리우스가 나라를 다스렸으나 폐위당했다. 그뒤 437년까지 플라키디아가 어린 아들 발렌티니아누스의 이름으로 서로마 제국을 다스렸으나 그동안 내내 실권을 쥔 사람은 유력한 귀족인 아이티우스였다. 이 시기에 일어난 중요한 사건으로는 반달족의 아프리카 상륙(429)을 들 수 있다. 10년 뒤 이들은 발렌티니아누스 정부의 종주권을 뒤엎었다. 437년 10월 29일 발렌티니아누스는 테오도시우스 2세(동로마 황제 408~450 재위)와 유도키아의 딸 리키니아 유독시아와 결혼했다. 결혼 뒤의 생활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아이티우스가 정부를 주도하는 동안 자신은 향락에 빠졌다. 444년 교황 레오 1세와 연합하는 의미에서 유명한 개정칙령 17조를 발표해 로마 속주에서 로마 주교의 우월권을 인정했다. 그의 치세 말기에 일어난 정치적 사건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훈족의 갈리아 침입(451)과 북부 이탈리아 침입(452)을 들 수 있다. 호노리아가 진심으로 자신과 결혼하자는것을 확인한 아틸라는 서로마 황제인 발렌티니아누스 3세에게 지참금으로 ‘로마제국’의 절반을 요청했다. 그러나 발렌티니아누스가 이러한 상황에 대처해 스스로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거짓 정보로 인해 아이티우스가 자신에게 불충했다고 믿은 발렌티니아누스는 454년 9월 21일 로마의 황궁에서 그를 직접 살해했다. [454년 9월 21일] 서로마 제국 황제인 발렌티니아누스 3세가 라벤나에서 에티우스를 죽였다. 이듬해 아이티우스의 밑에서 일하던 2명의 이방인 옵틸라와 트라우스틸라가 그들의 주인을 죽인 데 대한 보복으로 캄푸스마르티우스에서 그를 살해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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