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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지궁(月池宮) 또는 달지궁은 신라의 궁궐이였다. 안압지는 신라시대에는 월지궁으로 불렸다. 이 곳에서 연회를 하거나 사신들에게 접대를 했다고 한다. 이 곳에선 연못이 일품이다. 연못 주변을 장식한 바위들은 모두 바다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임해전(안압지 雁鴨池))에서 월지라는 명문(銘文)이 여러 점 나왔다. 최치원이 쓴 봉암사 지증대사 비문에는 헌강왕의 부름을 받아 월지궁에 당도하니 "달그림자가 연못 복판에 단정히 임(臨)하였다"고 했다. 이를 종합해 보면 월지궁 임해전이 분명하다. 신라의 반월성에는 조원전, 숭례전, 평의전, 남당, 월정당, 우사록관, 좌사록관, 영각성이 있었으며 궁으로는 내성, 영명궁, 월지궁, 영창궁, 동궁, 내황전 등이 있었다고 한다. 1980년 안압지에서 발굴된 토기 파편 등으로 안압지의 원명이 '월지’이고 동궁은 월지궁으로 불렸다는 주장이 나왔는데, 이는 안압지가 반월성 가까이에 있고 또 동궁의 위치가 연못 속에 비치는 아롱거리는 달을 감상하기 알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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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 - 월지궁(月池宮) 또는 달지궁은 신라의 궁궐이였다. 안압지는 신라시대에는 월지궁으로 불렸다. 이 곳에서 연회를 하거나 사신들에게 접대를 했다고 한다. 이 곳에선 연못이 일품이다. 연못 주변을 장식한 바위들은 모두 바다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임해전(안압지 雁鴨池))에서 월지라는 명문(銘文)이 여러 점 나왔다. 최치원이 쓴 봉암사 지증대사 비문에는 헌강왕의 부름을 받아 월지궁에 당도하니 "달그림자가 연못 복판에 단정히 임(臨)하였다"고 했다. 이를 종합해 보면 월지궁 임해전이 분명하다. 신라의 반월성에는 조원전, 숭례전, 평의전, 남당, 월정당, 우사록관, 좌사록관, 영각성이 있었으며 궁으로는 내성, 영명궁, 월지궁, 영창궁, 동궁, 내황전 등이 있었다고 한다. 1980년 안압지에서 발굴된 토기 파편 등으로 안압지의 원명이 '월지’이고 동궁은 월지궁으로 불렸다는 주장이 나왔는데, 이는 안압지가 반월성 가까이에 있고 또 동궁의 위치가 연못 속에 비치는 아롱거리는 달을 감상하기 알맞다. (月池)라는 명문(銘文)이 여러 점 나왔다. 최치원이 쓴 봉암사 지증대사 비문에는 헌강왕의 부름을 받아 월지궁(月池宮)에 당도하니 "달그림자가 연못 복판에 단정히 임(臨)하였다"고 했다. 이를 종합해 보면 월지궁 임해전이 ... 지증 대사 적조탑비에 따르면 지증 대사는 왕이 "인연은 같이 기뻐하고, 먼지 구덩이는 온 나라가 같이 걱정해야 한다"며 스님의 가르침을 구하자 서라벌 월지궁(月池宮;안압지)으로 가서 한차례 설법을 베풀었다. 역사소설 마지막 왕자에서의 60년 만에, 폐허가 된 경주 월지궁을 찾아간 선은 후세 사람들이 큰형 마의태자가 꾸었던 그 아름다운 꿈을 영원히 기억해 주기를 바라며 찬기파랑가를 부른다. 분류:신라 분류:월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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