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세충[Wang Shihch'ung, 王世充, ?~ 621]은 중국 수나라 말기의 군웅(群雄)이다. 본성은 지(支). 자는 행만(行滿). 조상은 서역의 이민족이었는데 후에 중국 영토로 이주하여 신풍(新豊 : 지금의 산시 성[陝西省] 린퉁[臨潼] 동북)에 정착했다. 경사(經史)에 밝고 병법(兵法)에 정통했다. 처음에 좌익위(左翊衛)로 관직에 올라 여러 관직을 거쳐 강도군승(江都郡丞)이 되었으며, 수 양제(煬帝)의 신임을 얻었다. 후에는 강도통수(江都通守)까지 지냈다. 617년 와강채(瓦崗寨)의 무장군이 동도(東都 : 뤄양[洛陽])로 진격해왔을 때, 왕세충이 군대를 이끌고 나가 그들을 물리쳤다. 618년 양제가 죽은 후 월왕(越王) 양통(楊)을 옹립하여 황제로 추대했다. 또 와강군 이밀(李密) 부대를 공격하여 패배시킨 후 세력이 갑자기 커졌다. 이밀은 수나라 근위병으로 이루어진 군대를 무찔렀지만 낙양의 왕세충에게 당해 본진으로 후퇴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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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충[Wang Shihch'ung, 王世充, ?~ 621]은 중국 수나라 말기의 군웅(群雄)이다. 본성은 지(支). 자는 행만(行滿). 조상은 서역의 이민족이었는데 후에 중국 영토로 이주하여 신풍(新豊 : 지금의 산시 성[陝西省] 린퉁[臨潼] 동북)에 정착했다. 경사(經史)에 밝고 병법(兵法)에 정통했다. 처음에 좌익위(左翊衛)로 관직에 올라 여러 관직을 거쳐 강도군승(江都郡丞)이 되었으며, 수 양제(煬帝)의 신임을 얻었다. 후에는 강도통수(江都通守)까지 지냈다. 617년 와강채(瓦崗寨)의 무장군이 동도(東都 : 뤄양[洛陽])로 진격해왔을 때, 왕세충이 군대를 이끌고 나가 그들을 물리쳤다. 618년 양제가 죽은 후 월왕(越王) 양통(楊)을 옹립하여 황제로 추대했다. 또 와강군 이밀(李密) 부대를 공격하여 패배시킨 후 세력이 갑자기 커졌다. 이밀은 수나라 근위병으로 이루어진 군대를 무찔렀지만 낙양의 왕세충에게 당해 본진으로 후퇴했다. 619년 월왕 양통을 폐하고 스스로 제위에 올라 연호를 개명(開明), 국호를 정(鄭)이라고 했다. 수나라 장군 출신인 왕세충이 낙양성을 점거하고 왕위를 찬탈해, 폭정을 일삼으며 백성들을 억압하자 그의 곁에는 쓸만한 사람은 모두 떠나고, 간신모리배로 인의 장막을 치면서 연명한다. 진왕(秦王) 이세민은 병주 지구를 완전히 수복하고 장안으로 돌아왔다. 전쟁 때문에 누적된 피로를 풀 사이도 없이 그는 왕세충(王世充)의 군대를 토벌하러 떠났다. 7월에 시작된 낙양에서의 공방전은 몹시 치열했다. 621년 당나라 군대에게 패하여 투항했으며, 장안(長安)으로 이송된 후 원한을 품은 사람에게 살해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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