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광왕(若光王)은 고구려 보장왕의 아들로 알려져 있으며 고구려 멸망과 함께 왕족인 약광왕(若光王)이 7세기 후반에 오늘날의 동경만 근처인 스가모(相模-현재의 神奈川縣 中郡 大磯町)지역에 정착하였다. 처음 정착지는 고구려 멸망 전에 일본 지역에 표류 해 왔던 쿄토 지역 이었다. 고려 약광왕은 고려군의 군사(郡司)로 임명되어 무사시노(武藏野) 개발에 힘썼으며, 다시 고국의 땅을 밟지 못하였다. 히다치 (常陸), 시모쓰케(下野)의 고려인 1799명을 무사시국(武藏國)에 옮기게 하고 고마군을 설치하였으며 약광왕(若光王)을 그 군의 대령(大領)으로 삼았다고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흉작이 거듭되고 질병이 창궐했다. 일본 속 '고려' 마을의 무연고 동포 위령탑이 있고 약광왕 석상이 있다. 관동 지방의 사이타마현(埼玉)에 고구려의 약광왕(若光王)을 모시고 있는 고려 신사는 약광의 명복을 기원하며 지은 절이다 '재일 백의 민족의 성지' 일본 국토의 중심지로 지금으로부터 약 1300년전 약광왕 일행이 풍수지리설에 의하여 최고의 땅으로 정하였다. 킨키(近畿)지방에는 백제왕과 그들의 일족을 기리는 백제왕 신사가 있다.
약광왕(若光王)은 고구려 보장왕의 아들로 알려져 있으며 고구려 멸망과 함께 왕족인 약광왕(若光王)이 7세기 후반에 오늘날의 동경만 근처인 스가모(相模-현재의 神奈川縣 中郡 大磯町)지역에 정착하였다. 처음 정착지는 고구려 멸망 전에 일본 지역에 표류 해 왔던 쿄토 지역 이었다. 고려 약광왕은 고려군의 군사(郡司)로 임명되어 무사시노(武藏野) 개발에 힘썼으며, 다시 고국의 땅을 밟지 못하였다. 히다치 (常陸), 시모쓰케(下野)의 고려인 1799명을 무사시국(武藏國)에 옮기게 하고 고마군을 설치하였으며 약광왕(若光王)을 그 군의 대령(大領)으로 삼았다고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흉작이 거듭되고 질병이 창궐했다. 일본 속 '고려' 마을의 무연고 동포 위령탑이 있고 약광왕 석상이 있다. 관동 지방의 사이타마현(埼玉)에 고구려의 약광왕(若光王)을 모시고 있는 고려 신사는 약광의 명복을 기원하며 지은 절이다 '재일 백의 민족의 성지' 일본 국토의 중심지로 지금으로부터 약 1300년전 약광왕 일행이 풍수지리설에 의하여 최고의 땅으로 정하였다. 킨키(近畿)지방에는 백제왕과 그들의 일족을 기리는 백제왕 신사가 있다. 약광왕 석상을 뒤로 하고 왼쪽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들어가면, 생각지도 못한 넓은 잔디밭이 등장한다. 잔디밭 안쪽으로는 웬 팔각정과 다층 석탑이 우뚝 서 있다. 두 왕자는 천황이 되고 왕이 되어 다시 만났다. '천지천황 폐하, 감축드리옵니다.' '감사합니다, 약광왕 폐하가 되심도 감축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폐하, 천황이 되신 기분이 어떠하시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