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姜紳, 1543년 ~ 1629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정여립의 난을 평정했고 임진왜란 때에도 크게 활약했다. 본관은 진주, 자는 원경, 호는 동고, 시호는 의간으로 1567년 진사가 되어 1577년 별시문과에 갑과로 급제했다. 1589년 정여립의 난을 평정하여 평난공신 3등과 진흥군에 봉해졌다. 1592년 승지를 거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함경도순찰사로 활약했으며 병조참판에 올랐다. 1596년 서북면순검사로 나갔으며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명나라 군사와 함께 왜군을 격퇴시키는 데 공을 세웠다. 전란 평정 후 부제학을 거쳐 병조판서와 이조판서를 지내고 중추부판서에 이르렀다. 1609년에 우참찬, 1610년 좌참찬을 지내고 기로소에 들어갔다. 저서로는 《진흥군일기》가 있다.
강신(姜紳, 1543년 ~ 1629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정여립의 난을 평정했고 임진왜란 때에도 크게 활약했다. 본관은 진주, 자는 원경, 호는 동고, 시호는 의간으로 1567년 진사가 되어 1577년 별시문과에 갑과로 급제했다. 1589년 정여립의 난을 평정하여 평난공신 3등과 진흥군에 봉해졌다. 1592년 승지를 거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함경도순찰사로 활약했으며 병조참판에 올랐다. 1596년 서북면순검사로 나갔으며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명나라 군사와 함께 왜군을 격퇴시키는 데 공을 세웠다. 전란 평정 후 부제학을 거쳐 병조판서와 이조판서를 지내고 중추부판서에 이르렀다. 1609년에 우참찬, 1610년 좌참찬을 지내고 기로소에 들어갔다. 저서로는 《진흥군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