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누스 피우스 (Titus Aurelius Fulvius Boionius Arrius Antoninus Pius)는 로마의 황제 (138년 - 161년)이다. 5현제(五賢帝) 중 4번째 황제로, 집정관급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재무관·법무관을 지낸 후 34세에 집정관이 되었다. 피우스는 '경건한 자'라는 뜻으로 원로원으로부터 주어진 존칭이다. 온화한 성품과 능력을 겸비한 인물로 84년간(96~180) 로마 제국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온 5현제(五賢帝) 중 4번째 황제였다. 원래 갈리아 출신 집안 태생으로 아버지와 할아버지, 외할아버지가 모두 콘술(집정관)을 지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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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누스 피우스 (Titus Aurelius Fulvius Boionius Arrius Antoninus Pius)는 로마의 황제 (138년 - 161년)이다. 5현제(五賢帝) 중 4번째 황제로, 집정관급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재무관·법무관을 지낸 후 34세에 집정관이 되었다. 피우스는 '경건한 자'라는 뜻으로 원로원으로부터 주어진 존칭이다. 온화한 성품과 능력을 겸비한 인물로 84년간(96~180) 로마 제국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온 5현제(五賢帝) 중 4번째 황제였다. 원래 갈리아 출신 집안 태생으로 아버지와 할아버지, 외할아버지가 모두 콘술(집정관)을 지냈다. 120년 콘술을 지냈고 하드리아누스 황제(117~138 재위)를 도와 이탈리아의 사법 행정을 맡았다. 134년경 아시아 속주 총독이 되었고 이후 황제의 고문관으로 임명받았다. 138년 하드리아누스의 양자 겸 후계자가 되었고 안토니누스 피우스의 후계자로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훗날 황제가 됨)와 루키우스 베루스가 뽑혔다. 권력을 쥐자 안토니누스 피우스는 원로원을 설득해 황제에게 부여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던 신(神)으로서의 영예를 하드리아누스에게 주도록 했다. 이 일을 비롯해 다른 몇몇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원로원에 의해 피우스라는 이름을 얻었다. 아내인 파우스티나가 140년말(또는 141년초)에 죽자 그녀를 기려 가난한 집의 딸들을 위한 자선기관인 푸엘라이 파우스티니아나이를 세웠다. 2세기의 문헌에서 안토니누스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는 것을 보면, 23년에 걸친 그의 치세 중 큰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로마령 브리튼에서 반란이 일어났으나 진압되었고, 142년에는 안토니누스 성벽이라 불리는 길이 58㎞의 수비대 주둔 국경 성벽이 세워져 하드리아누스 성벽 이 세워졌을 당시보다 로마 국경선 전체가 160㎞ 정도 더 길어졌다. 그밖에도 마우레타니아·게르마니아·다키아·이집트에서 일어난 반란이 진압되었다. 안토니누스의 치세 당시 사람들이 당대를 태평성대라고 생각했다는 사실이 웅변가 아일리우스 아리스티데스가 143~144년에 쓴 유명한 찬사문에 드러나 있다. 그러나 안토니누스가 죽은 뒤 제국은 적대적인 여러 부족에게 침략당했고 뒤이어 심각한 내란이 일어났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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