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람 2세는 사산 왕조의 군주이다. 동생인 나르세스는 종교의 자유를 주장했지만 바흐람 2세는 조로아스터만이 진리라고 하는 입장이었다. 덕분에 바흐람 1세가 집권 3년만에 사망하자 바흐람 2세때는 종교에 대한 탄압이 더욱 더 커진다. 그리고 그 탄압에는 바흐람 2세의 후처인 칸디다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바흐람 2세의 통치 시기에 동쪽으로는 인도 근처까지 영토를 확장하기도 합니다만 무리한 정책 탓인지 반란의 발생도 빈번했는데다가 로마의 공격까지 있었다. 당시 로마의 황제였던 카루스는 갈리아 출신으로 근위대장을 지내다가 황제의 자리에 오른 (위기시대 황제들이 그러하듯) 인물로 도나우강 인근의 전투를 빠르게 마무리 하고 티그리스강을 건너 크테시폰까지 공격해 들어가 바흐람 2세를 긴장시지만 갑자기 급사를 하는 바람에 페르시아는 위기를 넘기는데 그의 사망 원인은 벼락을 맞아서라는 설이 있다. 이후 로마의 위협은 카리누스 황제나 누메리아누스 황제(모두 1년짜리) 때는 그냥저냥 하다가 사두 정치로 유명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때는 메소포타미아와 서방 영토 대부분을 상실하고 굴욕적인 평화조약을 맺게 된다.
바흐람 2세는 사산 왕조의 군주이다. 동생인 나르세스는 종교의 자유를 주장했지만 바흐람 2세는 조로아스터만이 진리라고 하는 입장이었다. 덕분에 바흐람 1세가 집권 3년만에 사망하자 바흐람 2세때는 종교에 대한 탄압이 더욱 더 커진다. 그리고 그 탄압에는 바흐람 2세의 후처인 칸디다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바흐람 2세의 통치 시기에 동쪽으로는 인도 근처까지 영토를 확장하기도 합니다만 무리한 정책 탓인지 반란의 발생도 빈번했는데다가 로마의 공격까지 있었다. 당시 로마의 황제였던 카루스는 갈리아 출신으로 근위대장을 지내다가 황제의 자리에 오른 (위기시대 황제들이 그러하듯) 인물로 도나우강 인근의 전투를 빠르게 마무리 하고 티그리스강을 건너 크테시폰까지 공격해 들어가 바흐람 2세를 긴장시지만 갑자기 급사를 하는 바람에 페르시아는 위기를 넘기는데 그의 사망 원인은 벼락을 맞아서라는 설이 있다. 이후 로마의 위협은 카리누스 황제나 누메리아누스 황제(모두 1년짜리) 때는 그냥저냥 하다가 사두 정치로 유명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때는 메소포타미아와 서방 영토 대부분을 상실하고 굴욕적인 평화조약을 맺게 된다. 바흐람 2세가 죽고 난 다음에는 그의 아들 바흐람 3세가 뒤를 잊지만 불과 몇달이 지나지 않아 닭쫒던 개 꼴이던 나르세스가 찬탈을 해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