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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원종(朴元宗, 1467년 ~ 1510년)은 조선 전기의 무신으로 자는 백윤(伯胤), 시호는 무열로 본관은 순천이다. 월산대군의 부인 승평부부인과 장경왕후의 어머니 박씨는 그의 누이이며, 장경왕후의 외숙부이자 성종의 친형인 월산대군의 처남이다. 박원종(1467-1510년)은 판중추부사 박중선의 아들로 태어났다. 공신가문의 자제이면서 무술에 뛰어나 음보로 관직에 등용되어 부호군, 성전관이 되었으며 1486년(성종 17) 무과에 합격하면서 성종의 특별한 관심을 받았다. 선전내승(宣傳內乘), 동부승지, 중추부지사(中樞府知事) 등을 지냈다.공조와 병조의 참의를 거쳐 연산군 때 중추부지사 겸 경기도관찰사, 함경도병마절도사를 지내고 평성군에 봉해졌다. 중종 옹립의 반정(反正)의 주도적 역할을 하여 정국공신(靖國功臣) 1등에 오른다. 연산군이 박원종에 의해 폐출된 후, 진성대군은 실권이 없었고, 반정을 주도한 박원종에 의해 조정이 좌지우지되었다. 중종은 1488년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 사이에서 태어나 1506년 박원종등이 반정을 일으켜 왕위에 올랐다. 중종은 새로운 학자를 등용하여 나라의 기틀을 확립했다. 중종은 왕비가 3명 있었는데, 원비인 단경왕후는 신수군의 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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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 - 박원종(朴元宗, 1467년 ~ 1510년)은 조선 전기의 무신으로 자는 백윤(伯胤), 시호는 무열로 본관은 순천이다. 월산대군의 부인 승평부부인과 장경왕후의 어머니 박씨는 그의 누이이며, 장경왕후의 외숙부이자 성종의 친형인 월산대군의 처남이다. 박원종(1467-1510년)은 판중추부사 박중선의 아들로 태어났다. 공신가문의 자제이면서 무술에 뛰어나 음보로 관직에 등용되어 부호군, 성전관이 되었으며 1486년(성종 17) 무과에 합격하면서 성종의 특별한 관심을 받았다. 선전내승(宣傳內乘), 동부승지, 중추부지사(中樞府知事) 등을 지냈다.공조와 병조의 참의를 거쳐 연산군 때 중추부지사 겸 경기도관찰사, 함경도병마절도사를 지내고 평성군에 봉해졌다. 중종 옹립의 반정(反正)의 주도적 역할을 하여 정국공신(靖國功臣) 1등에 오른다. 연산군의 패악질이 절정에 달했던 1506년 9월 2일. 서울의 밤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반정 주도세력 박원종·성희안·유순정·홍경주 등은 두 패로 나눠 정현왕후를 급히 찾았다. 연산군은 폭군이었으므로 박원종, 유자광 등이 반정을 일으켜 진성대군을 왕위에 세웠다. 역사는 결과중심적이며 승자의 것이다.박원종의 난(1506년)은 1506년에 박원종이 유순정, 성희안, 신윤무, 박영문, 장정, 홍경주 등과 함께 연산군의 실정과 학정에 반기를 들어 일으킨 난이다. 양력으로 환산하자면, 11월 중순정도 새벽, 폭군 연산을 몰아내는 역사적 사건, 중종 반정이 단행된다.박원종, 성희안을 주축으로 일어난 반정세력은 창의문을 점령하고, 마지막으로 경복궁으로 들어가, 궁궐을 접수하는데, 중심이 되었던 인물이 박원종, 성희안(成希顔), 유순정(柳順汀) 등이었는데, 일을 모의하기 위해 박원종의 집에 모이기로 하고 마침 쓸 데가 있어서 박원종이 보리자루 한 포대를 가져다 놓았다. 연산군이 박원종에 의해 폐출된 후, 진성대군은 실권이 없었고, 반정을 주도한 박원종에 의해 조정이 좌지우지되었다. 중종은 1488년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 사이에서 태어나 1506년 박원종등이 반정을 일으켜 왕위에 올랐다. 중종은 새로운 학자를 등용하여 나라의 기틀을 확립했다. 중종은 왕비가 3명 있었는데, 원비인 단경왕후는 신수군의 딸이였다. 1507년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와 1509년 영의정에 오르고 평성부원군에 봉해졌다. 사후 중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중종반정 공신인 충열공 박원종(1467∼1510)의 묘역은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1리 산31번지 금대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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