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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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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묘학(苗學)은 묘족(苗族)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하나의 과학이다. 지금 국제학술계에서 묘학(苗學)을 연구하는 것이 인기 있는 학설로 되었다. 1981년 2월 홍콩에서 발행된 이당(李唐) 著「上古史」에는(본문 2쪽 참고) 상고(上古) 때부터 내려오던 민족은 모두 동방민족(東方民族)이며, 황제(黃帝) 이후 요, 순, 하, 은, 주 (堯舜夏殷周)로 부터 고구려 주몽(朱蒙)에 이르기까지 묘족(苗族)의 후예임은 의심할바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중국·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일본·오스트리아·한국 등 여러 나라에서 많은 전문가들이 전문적으로 연구에 종사하거나 혹은 전문적인 연구기구를 설치하였다. 이것은 묘족이 과경 민족이기 때문이다. 지금 묘족(苗族)의 인구는 600여만명인데 중국경내에 500만이 거주하고 100만이 세계 각지에 분포되어 있다. 묘학(苗學)연구는 마땅히 치우(蚩尤)를 연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치우(蚩尤)는 묘족(苗族)의 선조이기 때문에 그는 중화문명사에서 전환적 의의를 띠는 인문시조이다. 당시의 중화대지는 바로 원시사회말기에 처하였는데 이른바 국가와 민족이 없었고 한족, 묘족과 기타 소수 민족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중화민족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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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묘학(苗學)은 묘족(苗族)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하나의 과학이다. 지금 국제학술계에서 묘학(苗學)을 연구하는 것이 인기 있는 학설로 되었다. 1981년 2월 홍콩에서 발행된 이당(李唐) 著「上古史」에는(본문 2쪽 참고) 상고(上古) 때부터 내려오던 민족은 모두 동방민족(東方民族)이며, 황제(黃帝) 이후 요, 순, 하, 은, 주 (堯舜夏殷周)로 부터 고구려 주몽(朱蒙)에 이르기까지 묘족(苗族)의 후예임은 의심할바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중국·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일본·오스트리아·한국 등 여러 나라에서 많은 전문가들이 전문적으로 연구에 종사하거나 혹은 전문적인 연구기구를 설치하였다. 이것은 묘족이 과경 민족이기 때문이다. 지금 묘족(苗族)의 인구는 600여만명인데 중국경내에 500만이 거주하고 100만이 세계 각지에 분포되어 있다. 묘학(苗學)연구는 마땅히 치우(蚩尤)를 연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치우(蚩尤)는 묘족(苗族)의 선조이기 때문에 그는 중화문명사에서 전환적 의의를 띠는 인문시조이다. 당시의 중화대지는 바로 원시사회말기에 처하였는데 이른바 국가와 민족이 없었고 한족, 묘족과 기타 소수 민족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중화민족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당시에 다만 각지에 줄 늘어 서있는 크고 작은 씨족, 부락과 부락연맹 뿐이었다. 그들은 지반을 서로 빼앗기 위하여 경쟁적으로 충돌과 전쟁을 발동하였다. 황제는 황제부락의 수령이고 치우는 구려(九黎 : 아홉나라)부락의 수령으로서 그들 사이의 전쟁은 원시사회말기 중원대지의 사회가 진보한 필연적인 현상이다. 누가 정통이고 누가 비정통이며, 누가 옳고 누가 그르며, 누가 존귀하고 누가 비천하다고 말할 수 없으며, 그들의 지위는 평등한 것이다. 맑스주의 민족관은 모든 민족은 크고 작고, 언어, 발전정도를 막론하고 모두 평등하다고 인정한다. 현대의 각 민족(民族)이 이러할 뿐만 아니라 역사상의 부락관계, 민족관계도 마땅히 민족평등의 시각으로서 대하고 인식하여야 한다. 이렇게 보면 황제와 치우 각자의 부락은 평등하고 사람도 평등한 것이다. 그들 사이에 누가 정통이라고 찬양해야 하고 누가 반역이라고 책망해야 하는 문제가 없다. 묘족(苗族)은 우리나라(中國)의 비교적 큰 소수 민족의 하나로서 그 역사가 유구하다. 묘족간사(苗族簡史)의 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 장강(長江) 중하류와 황하(黃河) 하류일대에 매우 오랜 시기 아주 많은 원시인류가 살았는데, 그들은 세세대대(世世代代)로 번성하여 뻗어나갔으며 간고한 노동을 거쳐 지금으로부터 5천년전에 점차적으로 부락연맹을 형성하였다. 그 중의 한 개 부락을 구려(九黎)라 하였는데 치우(蚩尤)를 그 수령으로 하였다."고 한다. 전설시대의 치우 구려부집단이 바로 이후 묘족(苗族)의 최초의 선민(先民)이며 혹은 적어도 묘족(苗族)의 선민(先民)을 포괄한다. 나는 치우는 묘족(苗族)의 선조(苗族)일 뿐만 아니라, 그는 황제(黃帝), 염제(炎帝)와 같이 중화민족역사에서의 3대 인문시조(人文始祖)라고 여긴다. 본시 생명의 생성요건은 크게 보아 물(水)·빛(光)·소리(音)이다. 다시말해 기(氣)의 분신인 3대 요건 속에 들어있는 탄소·질소·수소와 함께 단백질 입자인 미세한 유기체가 형성되어 단세포 아메바가 생긴 데서부터 생명체는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과학자들이 보는 견해로는 생명체가 태어난 것은 대체로 35억 년 전후로 보고 있는 것이 지배적이다. 한마디로 아득한 옛날에는 지구의 북과 남부 지방은 극한 지대였으므로 생명체가 생길 가능성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극한 시대 즉 天山 즉 白山은 온난지대(溫暖地帶) 였으므로, 인류 최초로 인간의 씨, 즉 싹이라 할 수 있는 묘족(苗族)이 생기게 되었다. 묘족의 처음 시조가 바로 인류 최초로 나라를 세운 반고환인(盤古桓仁)이다. 반고환인씨는 모든 정사(正史)에서 기록한 것과 같이 한민족의 시조임을 입증하고 있다. 그래서 환인씨(桓仁氏)를 황묘(皇苗)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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