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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드리아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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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드리아누스 (Publius Aelius Hadrianus) 황제는 로마제국을 최대 영토로 만든 트라야누스(Traianus)황제의 뒤를 이었다. 로마 황제들 가운데 가장 오랜 시간 제국을 순행한 황제이고, 어쩌면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랜 시간 자신이 다스리는 국가를 돌아본 황제일지도 모른다. 하드리아누스(Hadrianus, 76년 1월 24일~138년 7월 10일)는 로마 제국의 14대 황제로, 오현제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베리아 반도의 이탈리카 출생으로, 남부 스페인에 정착한 정착민의 후예다. 어렸을 때 로마로 건너가, 그곳에서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85년, 하드리아누스의 아버지인 푸블리우스 아일리우스가 세상을 떠난다. 이때 하드리아누스의 후견인이 된 인물이, 그의 먼 친척이자 후에 황제가 되는 트라야누스였다. 이후 하드리아누스는, 출세 가도를 달린다. 96년과 97년에는 군단의 지휘관으로 임명되어 공적을 세웠고, 101년에는 재무관을 지냈다. 102년에는 황제가 된 트라야누스의 다키아 전쟁 때 동행하기도 했다. 그 후로도 호민관, 법무관 등을 역임하고 108년에 트라야누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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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드리아누스 (Publius Aelius Hadrianus) 황제는 로마제국을 최대 영토로 만든 트라야누스(Traianus)황제의 뒤를 이었다. 로마 황제들 가운데 가장 오랜 시간 제국을 순행한 황제이고, 어쩌면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랜 시간 자신이 다스리는 국가를 돌아본 황제일지도 모른다. 하드리아누스(Hadrianus, 76년 1월 24일~138년 7월 10일)는 로마 제국의 14대 황제로, 오현제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베리아 반도의 이탈리카 출생으로, 남부 스페인에 정착한 정착민의 후예다. 어렸을 때 로마로 건너가, 그곳에서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85년, 하드리아누스의 아버지인 푸블리우스 아일리우스가 세상을 떠난다. 이때 하드리아누스의 후견인이 된 인물이, 그의 먼 친척이자 후에 황제가 되는 트라야누스였다. 이후 하드리아누스는, 출세 가도를 달린다. 96년과 97년에는 군단의 지휘관으로 임명되어 공적을 세웠고, 101년에는 재무관을 지냈다. 102년에는 황제가 된 트라야누스의 다키아 전쟁 때 동행하기도 했다. 그 후로도 호민관, 법무관 등을 역임하고 108년에 트라야누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출됐다. 117년에 트라야누스가 파르티아 원정을 떠났을 때는, 시리아에 남아 주력부대의 지휘를 맡았다. 같은 해 8월, 하드리아누스는 두 가지 소식을 접하게 된다. 트라야누스가 자신을 양자로 맞이해 후계자로 지명했다는 소식이 첫 번째였고, 그 이틀 뒤에 트라야누스가 서거했다는 것이 다른 하나였다. 이에 군대는 즉시 하드리아누스를 황제로 추대했고, 원로원 역시 하드리아누스를 황제로 인정했다. 118년에 수도 로마는 새로운 황제를 맞이하지만, 이 새로운 황제는 로마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121년에 제국 순방길에 오른 것이다. 하드리아누스는 갈리아와 게르마니아로 갔다가, 이듬해에 브리타니아를 살펴본다. 그후 스페인, 소아시아에 들렀다가 124년에 아테네를 방문한다. 하드리아누스가 첫 번째 순방에서 돌아온 것은, 이듬해인 125년이 되어서였다. 하드리아누스가 순방에 떠난 데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있었다. 첫 번째가, 선제 트라야누스의 적극정책이었다. 트라야누스를 황제로 받든 로마는 제국의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갖게 됐고, 넓은 영토의 주인이 된 하드리아누스는 제국의 행정 전반을 시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두 번째는 하드리아누스의 개인적인 것인데, 모든 사물과 사람에 대한 그의 호기심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 두 가지 이유로, 하드리아누스는 20년간 세 차례에 걸쳐 제국 전역을 시찰하게 된다. 한편, 이 순방 동안 하드리아누스는 세 가지의 업적을 남긴다. 게르마니아에서는 게르만족에 대한 수비벽인 게르마니아 방벽을 강화했고, 브리타니아에서는 하드리아누스 장성을 쌓아 북방의 픽트족의 침입에 대비한 것이다. 또 소아시아에서는 파르티아와 화의를 체결, 아르메니아를 로마의 보호국으로 삼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세 차례에 걸쳐 제국을 순방하면서, 하드리아누스는 제국의 방위망을 다지고 각지에서 일어나는 반란에 대처하는 한편, 속주의 여러 도시를 건설, 육성했다. 또 공공시설을 확충하는 데도 노력했고, 아테네와 로마에 각종 신전을 건축하기도 했다. 이런 여러 가지 일들을 진행한 제국 순방에 걸린 시간은, 하드리아누스가 황제로 있던 시기의 삼분의 이를 차지했다. 한편 로마에 있을 때는 제국의 행정제도와 관료제도, 군사제도의 정비에도 힘을 기울였다. 특히 통치기구의 정비가 매우 철저해, 하드리아누스가 구축한 관료기구는 후대의 모범이 되었다고 한다. 한편 화재로 파손됐던 판테온 신전이 완전히 새로 지어진 것도 하드리아누스 때의 일이고, 지금은 산탄젤로 성이라고 불리는 하드리아누스 영묘는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능묘를 본따 건축한 것이다. 138년, 하드리아누스는 당시 18세였던 안니우스 베루스라는 소년에게 제위를 물려주려 한다. 하지만 18세라는 나이가 걸렸는지, 하드리아누스는 원로원의 연로 의원이자 평판이 높았던 안토니누스를 양자로 입양해 후계자로 지명한다. 단, 안토니누스가 베루스를 양자로 맞이할 것이 조건이었다. 하드리아누스의 계획은 베루스가 황제에 즉위하기 알맞은 나이가 될 때까지 안토니누스가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었고, 당시 53세였던 안토니누스가 그리 오래 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안토니누스가 세상을 떠난 해는 그가 76세 되던 해인 161년이었고, 하드리아누스가 후계자로 삼으려고 생각했던 베루스는 41세의 나이로 황제 자리에 오른다. 제국을 다스리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수도에 머무르면서 각지의 총독들이 보낸 문서를 일일이 읽어보며 지시를 내리는 방법도 있고, 일일이 각지에 나가보면서 지시를 내릴 수도 있다. 로마 제국이라는 넓은 영토를 자신의 치세의 삼분의 이을 바쳐 순행한 하드리아누스에게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분류:로마의 황제 분류:캘레도니아 분류:하드리아누스 분류:야누스 분류:푸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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