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단갑(河亶甲)은 은나라의 왕이였다. 태무(중종)가 붕하하자 아들인 중정(中丁)이 왕위에 오르고 아우인 하단갑이 재상을 맡는다. 기원전 1534년(정해년) 은나라 12대 하단갑(河亶甲) 즉위하고 수도를 상읍(相)으로 삼았다. 중국 최초의 역사 문헌인 <<죽서기년>>에 따르면, 은왕(殷王) 하단갑(河亶甲)의 통치시기의 기록에, "3년, 팽백(彭伯)이 비를 무너뜨렸다. 4년 남이(藍夷)를 정벌했다." 22세 번한 소밀(蘇密) 계사년에 은(殷)나라가 조공을 바치지 않으므로 가서 북박을 치게 하니 그 왕 하단갑(河亶甲)이 이에 사죄하였다. 형의 왕위를 물려받은 하단갑(河亶甲)은 아들 조을(祖乙)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조을은 다시 형읍(邢, 하북성 邢臺縣 일대의 땅)으로 천도하였다.
하단갑(河亶甲)은 은나라의 왕이였다. 태무(중종)가 붕하하자 아들인 중정(中丁)이 왕위에 오르고 아우인 하단갑이 재상을 맡는다. 기원전 1534년(정해년) 은나라 12대 하단갑(河亶甲) 즉위하고 수도를 상읍(相)으로 삼았다. 중국 최초의 역사 문헌인 <<죽서기년>>에 따르면, 은왕(殷王) 하단갑(河亶甲)의 통치시기의 기록에, "3년, 팽백(彭伯)이 비를 무너뜨렸다. 4년 남이(藍夷)를 정벌했다." 22세 번한 소밀(蘇密) 계사년에 은(殷)나라가 조공을 바치지 않으므로 가서 북박을 치게 하니 그 왕 하단갑(河亶甲)이 이에 사죄하였다. 형의 왕위를 물려받은 하단갑(河亶甲)은 아들 조을(祖乙)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조을은 다시 형읍(邢, 하북성 邢臺縣 일대의 땅)으로 천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