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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천 읍성[泗川邑城]은 경남 사천시 사천읍 정의리, 선인리의 읍성이다. 경남기념물 제144호이며 조선시대에 축성된 사천의 읍성이다. 돌과 흙으로 쌓은 성곽으로 주거지 주위나 산세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견고하게 성벽을 쌓아 유사시에 적을 방어하기 위한 평산성이다. 둘레 약 1.5km로 현재 약 300m의 성벽이 남아 있다. 이 성은 1442년(세종 24) 병조참판 신인손(辛引孫)이 왕명을 받아 쌓았다고 하며, 그로부터 4년 뒤 관청을 짓고 읍치를 옮겼다고 한다. 사천읍성에 관한 문헌자료로는 먼저 《문종실록》에 삼도도체찰사 정본이 상계한 기록이 보이는데, 이에 의하면 “사천읍성의 둘레는 3,015척(약 900m), 성벽의 높이는 평지가 11척 5촌이고 험한 곳이 10척 5촌이며, 적대가 15개, 여장이 580개, 성문은 셋이며 성문의 앞을 가리어 빙 둘러친 성문을 방어하는 옹성이 있다.”고 하여 그 규모를 소상히 밝히고 있다. 《경상도속찬지리지》 사천현조에는 “현성은 을축년에 쌓았고 석축의 둘레는 3,015척이며 높이는 15척이다. 성 안에 국창이 있고 샘과 우물 세 곳은 여름에도 겨울에도 마르지 않는다.”고 적고 있다. 성벽의 높이가 약간 높은 것은 증축이 가해졌으리라 생각되며 ‘을축’은 축성 연대로서 세종 27년(1445)에 해당된다. 한편 이 성은 임진왜란 때인 1598년(선조 31) 왜군에게 일시 점령당하였다가 같은 해 9월 경상도병사 정기룡(鄭起龍)이 이끄는 조선군과 명나라 원군의 연합군에 의하여 탈환된 역사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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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 - 사천 읍성[泗川邑城]은 경남 사천시 사천읍 정의리, 선인리의 읍성이다. 경남기념물 제144호이며 조선시대에 축성된 사천의 읍성이다. 돌과 흙으로 쌓은 성곽으로 주거지 주위나 산세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견고하게 성벽을 쌓아 유사시에 적을 방어하기 위한 평산성이다. 둘레 약 1.5km로 현재 약 300m의 성벽이 남아 있다. 이 성은 1442년(세종 24) 병조참판 신인손(辛引孫)이 왕명을 받아 쌓았다고 하며, 그로부터 4년 뒤 관청을 짓고 읍치를 옮겼다고 한다. 사천읍성에 관한 문헌자료로는 먼저 《문종실록》에 삼도도체찰사 정본이 상계한 기록이 보이는데, 이에 의하면 “사천읍성의 둘레는 3,015척(약 900m), 성벽의 높이는 평지가 11척 5촌이고 험한 곳이 10척 5촌이며, 적대가 15개, 여장이 580개, 성문은 셋이며 성문의 앞을 가리어 빙 둘러친 성문을 방어하는 옹성이 있다.”고 하여 그 규모를 소상히 밝히고 있다. 《경상도속찬지리지》 사천현조에는 “현성은 을축년에 쌓았고 석축의 둘레는 3,015척이며 높이는 15척이다. 성 안에 국창이 있고 샘과 우물 세 곳은 여름에도 겨울에도 마르지 않는다.”고 적고 있다. 성벽의 높이가 약간 높은 것은 증축이 가해졌으리라 생각되며 ‘을축’은 축성 연대로서 세종 27년(1445)에 해당된다. 한편 이 성은 임진왜란 때인 1598년(선조 31) 왜군에게 일시 점령당하였다가 같은 해 9월 경상도병사 정기룡(鄭起龍)이 이끄는 조선군과 명나라 원군의 연합군에 의하여 탈환된 역사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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