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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테오 카르카시는 이탈리아의 프로렌스에서 출생한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로 15,6세에 연주회를 갖고 절찬 받은 것을 깃점으로 하여, 그의 전 생애에 걸쳐 유럽 각국의 음악 팬들을 열광시킨 천재적인 음악가이다. 10여 년간의 국내 연주 생활에서 연주가로서의 기량을 닦은 그는, 28세 때 파리로 건너감으로써, 그 기나긴 외국 연주 생활의 첫 걸음을 시작하였다. 1820년, 처음으로 파리의 청중들 앞에서 나타나서 크게 갈채 받은 것을 비롯하여, 1822년의 런던 공연과 파리공연, 1823년 제 2차 런던여행, 1824년 오스트리아, 독일지반 연주여행, 1826년 제 3차 런던공연, 1827년의 독열 연주여행 등, 젊은 시절의 카르카시는 결코 한 곳에 정착하는 일이 없었다. 특히 1828년, 당시의 대 스타였던 성악가 스토크 하우젠과 협연한 런던 오페라 하우스 연주회는 공전의 대 성황을 이룸으로써, 대가로서의 풍모를 충분히 드러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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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 - 마테오 카르카시는 이탈리아의 프로렌스에서 출생한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로 15,6세에 연주회를 갖고 절찬 받은 것을 깃점으로 하여, 그의 전 생애에 걸쳐 유럽 각국의 음악 팬들을 열광시킨 천재적인 음악가이다. 10여 년간의 국내 연주 생활에서 연주가로서의 기량을 닦은 그는, 28세 때 파리로 건너감으로써, 그 기나긴 외국 연주 생활의 첫 걸음을 시작하였다. 1820년, 처음으로 파리의 청중들 앞에서 나타나서 크게 갈채 받은 것을 비롯하여, 1822년의 런던 공연과 파리공연, 1823년 제 2차 런던여행, 1824년 오스트리아, 독일지반 연주여행, 1826년 제 3차 런던공연, 1827년의 독열 연주여행 등, 젊은 시절의 카르카시는 결코 한 곳에 정착하는 일이 없었다. 특히 1828년, 당시의 대 스타였던 성악가 스토크 하우젠과 협연한 런던 오페라 하우스 연주회는 공전의 대 성황을 이룸으로써, 대가로서의 풍모를 충분히 드러내었다. 한 곳에 머무를 수 없는 분망한 성격과 여러 나라에서의 연속적인 성공은 그로 하여금 전 생애의 반 이상을 외국에서 지내게 하였다. 1820년 파리로 떠나 온 이후, 그가 모국을 방문한 것은 실로 16년이 지난 1836년, 44살 때였다. 그나마, 그의 모국방은 그 한 번으로 그쳤을 뿐으로, 1853년 1월 16일 그의 청신하고 기품있는 음악 생활이 막을 내리기까지, 만년은 파리에 머물면서 연주, 작곡, 교수로 바쁜나날을 보냈던 것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주로 파리에서 출판되었다. 다만, Op.1[세 개의 소나타]가 그의 첫번 독일 연주 여행 때에, 그 곳 팬들의 간청에 의하여, 메엔스의 쇼트(Schott)에서 출판되었을 뿐이다. Op.2 [세 개의 론도]가 그의 친구이자 출판없자인 메손니에르에게 헌정 된 후, 카르카시의 작품은 거의 메손니에르의 손으로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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